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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DNA를 가진 아이들, 격려해 주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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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12면

산만한 아이가 곧 ‘환자’인 시대다. 누군가 산만한 아이를 두고 “혹시…”란 말을 시작한다면, 뒤에 이어질 말은 100%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다. “약 먹으면 좋아진다”란 ‘덕담’까지 덧붙일 가능성도 크다.미국의 심리 치료사인 저자는 이런 세태에 반기를 든다. ‘산만’이 병이 아니라 개성이란 주장이다. 그는 산만한 아이들을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아이들이 대체로 뛰어난 창의력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운다.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로부터 “주의가 산만하고, 정서가 불안하며, 학습능력이 부족해 학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자퇴했던 발명왕 에디슨과 같은 부류란 뜻이다.

『산만한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톰 하트만 지음, 최기철 옮김, 미래의창, 1만원

그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ADHD의 세 가지 특성으로 꼽히는 산만성과 충동성, 위험 추구성 모두 농경시대 이전의 수렵시대에서는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는 것이다. 유능한 사냥꾼이라면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직관이 뛰어나다. 에디슨의 예에서 보듯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발명가와 혁신가ㆍ기업가가 될 소질이 다분하다. 이들의 잠재력이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가속화시킬 자산이다.

산만한 자녀를 둔 부모들. 학교에서, 동네에서 죄인 취급당하며 ‘속앓이’해온 부모들이라면 정신이 번쩍 뜨일 논리다. 그런데 왜 이런 ‘사냥꾼 유전자’가 병 취급을 받게 된 걸까. 저자는 그 대답을 공교육 시스템에서 찾았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몇 시간씩 한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만에 과목을 바꾸어 가며 공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산만한 아이들이 열등생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어떤 직업이 그런 교육제도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현 교육제도가 배출해 내는 결과물은 “말을 잘 듣는 일꾼, 따지지 않는 시민”일 뿐이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에디슨 성향’을 지닌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 됐다. 에디슨이 자랐던 1800년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환경이다. 저자는 에디슨 어머니가 했던 홈스쿨링을 ‘에디슨 성향’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방식으로 꼽았다. 아이들의 욕구에 맞게 쉽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데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내야만 하는 억압적인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격려하라” “안정감을 심어 주어라” “과잉보호하지 마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어라” 등도 산만한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특히 “아이가 잘하는 것(그것이 스케이트보드 타기나 만화책 모으기라 할지라도)을 찾아내 더 열심히 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라”는 당부도 귀 기울일 만하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무언가에서 성공하는 경험을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에디슨의 어머니도 에디슨이 학교 가는 대신 화학 약품이나 전기를 갖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자 지하실에 아이만의 연구실을 꾸며 줬다.

약물치료의 유혹에 대해서도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ADHD 치료약을 두고 “아이들을 교사의 마음에 들게 변화시키기는 했지만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면서 “교사들만 좋았다”고 못 박았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꼭 기존 틀에 억지로 구겨 넣고 말겠다는 어른들의 무모한 고집을 돌아보게 만드는 주장이다. 꼭 산만한 아이가 에디슨처럼 돼 세상을 바꿔놓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제 몫을 하며 살도록 존중하며 키우는 게 어른의 도리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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