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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평가損 12조원 금융기관 '목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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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증시폭락때 증권당국의 권유로 무제한 매입해놓은 주식이 금융기관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침체장세가 3년째 지속되면서 보유주식의 평가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대적자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당국은 금융기관들의 무더기 적자결산사태를 막고 증시안정을 위해 지난 96년 평가손을 모두 회계처리하지 말고 일부만 반영토록 유예조치를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기업의 회계장부에 대한 신뢰성이 땅에 떨어져 있는 판에 이런 편법은 회계자료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게 하게 됐다.

결국 평가손 반영비율을 높여나간다는게 당국의 방침이지만업계는 적자결산을 우려해 반영비율을 될 수 있는대로 낮추자고 주장해 결산때마다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말 97회계연도 반기결산을 끝낸 증권사들의 경우 증권감독원과 줄다리기 끝에유가증권평가손 최저 반영비율이 30%이상으로 결정됐다.

또 12월 결산법인인 은행은올 반기 (1월1일~6월30일) 결산때 40%의 반영비율이 적용됐다.

보유주식을 시가로환산할 때 주가하락으로 매입가격 (장부가) 보다 떨어졌는데도 장부엔 손실의 40%만 반영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2만5천원에 매입한 주식의 시세가 결산때 1만5천원으로 하락했다면 1만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지만 대차대조표상에는 4천원의 손실만 입은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식투자 손실로 수지가 크게 악화됐음에도 표면상으로는 흑자가 날 수도 있다.

물론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자산운용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차원에서 평가손을 몽땅 계상하는 금융기관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이 평가손 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르러 자칫자본잠식상태에 빠질까봐 이같은 과감한 조치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금융기관별 보유주식 규모를 보면 은행이 11조7천7백29억원으로 가장 많고, 보험이 11조7천4백44억이며, 투신이 3조9천5백62억원, 증권이 3조6천8백13억원에 달했다.

주가침체에 따른 평가손규모는 보험이 5조원대, 은행이 4조원대, 투신과 증권이 1조6천억원와 1조3천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평가손을 모두 합치면 무려 12조원을 웃돈다.

이자등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금융기관의 손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정부는 당초 지난 90년3월부터 유가증권 저가평가제를 도입해 보유주식의 가격을 시가로 결산토록 하는 방침을 세웠었다.

이는 유가증권평가가 금융기관별로 다를 경우 회계기준의 원칙인 비교가능성과 일관성이 크게 훼손되고 국제관행에도 맞지 않아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 9월 첫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당시 9백선이던 종합주가지수가 6백선으로 곤두박질치자 거액의 주식평가손을 안게된 기관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92년 9월 이후로 1차 연기됐다.

그래도 주식시장의 회복기미가 별로 않보임에 따라 92년7월에는 다시 '증권관리위원회가 따로 정하는 회계연도까지' 로 무기한 연기됐다.

95년 결산기에 은행은 시가회계를 포기하고 처음으로 유가증권 평가손을 30%만 반영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이비율을 유지해오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해 95년부터 2년 연속 평가손 최저 반영비율을 15%로 했다.

하지만 동원.동양등 일부 증권사들은 96회계연도에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해평가손 1백% 반영을 단행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재경 3투신사의 경우도 지난 9월말에 경영 정상화를 위해 4조원에 달하는 보유주식의 평가손 1조여원을 장부에 그대로 기재했다.

당장 7천여억원씩 결손이 생겨 자본잠식에 빠지게 됐지만 89년 이후 8년동안의 '앓던 이' 가 빠졌고 게다가 주식운용의 여력이 넓어져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자평이다.

은행.증권.보험등 다른 금융기관들은 99년까지 평가손 반영비율을 1백%로 높일 방침이다.

여기엔 더이상 시가회계를 늦출수 없다는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그동안 금융기관이 막대한 평가손을 본 것은 증시안정화조치등 관치금융의 소산이라는 '원죄' 때문에 한시적으로 반영 비율을 낮춰준 것뿐인데 언제까지 봐줄 수 많은 없다는 게 정부입장이다.

대신 시가회계를 일시에 적용할 경우 무엇보다 금융기관들이 보유주식을 대거 매물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등을 감안해 99년까지 순차적으로 반영비율을 높여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금융기관들이 그때까지 평가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주가가 오를 기미만 보이면 보유주식처분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증시는 상당한 매물압박에 시달릴 전망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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