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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TV토론자의 고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자민련 김종필 (金鍾泌) 총재에 따르면 87년 대통령선거때 민정당 노태우 (盧泰愚) 후보가 여의도광장에서 가진 1백만명 군중집회에 들어간 경비는 3천억원. 청중 한사람당 30만원의 경비가 들었다는 계산이다.

경비가 과다하게 추산됐을 수도 있지만 그 절반이라도 1천5백억원이다.

그래서 대선 후보들은 돈이 훨씬 덜 드는 선거방법으로 정착되고 있는 TV토론이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재래식 군중집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투명한 선거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난 8월22일부터 문화방송이 다섯명의 대선 후보를 상대로 가진 토론은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있었던 토론과 비교해서 몇 가지 중요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 토론에서는 패널리스트를 3명으로 줄여 한 사람이 후보와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대폭 늘렸다.

질문시간의 제한을 없애 후보의 답변이 함량미달이거나 동문서답일 경우 계속 추궁할 수 있게 했다.

토론장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청중을 없앴다. 후보와 토론자들이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가 없도록 수상기를 치웠다.

후보와 토론자들이 거리를 두고 앉던 방식을 버리고 단순한 배경 앞에서 후보와 패널리스트들을 원탁에 둘러앉게 하여 딱딱하지 않은 대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한 결과 후보와 토론자들이 의견을 주고 받고, 때로는 격론을 벌일 시간 여유가 훨씬 많아졌다.

토론자가 8명 또는 10명이었다면 불가능했을 후속 질문과 추궁성 질문의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이 방식이 하나의 모델로 정착될 것 같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불만도 많이 들어왔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토론자가 너무 몰아세웠다는 불만과,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를 추궁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첫날 이인제 (李仁濟) 후보와의 토론이 끝난 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항의는 거셌다.

이 토론의 경우에는 토론자들이 항의의 빌미를 제공했다.

느닷없이 어떤 특정한 책을 읽었느냐고 물어 그 책을 읽지 않은 李후보가 당황했다.

국민이 불러서 출마했다는 李후보가 국민이라는 용어를 남용하자 토론자의 한 사람이 농경사회의 유물인 국민이라는 말은 그렇게 자주 쓰는게 아니라고 나무랐다.

그건 실수였다.

다음날 조순 (趙淳) 후보와의 토론은 처음부터 맥이 빠지고 박력이 없었다.

토론자들은 전날의 항의에 다소는 위축이 돼 있었고 趙후보의 톤이 낮고 늘쩡해서 사회자의 힘으로 분위기를 '띄우기' 가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한 토론자가 趙후보를 한번 '선생님' 이라고 호칭했다.

편파시비가 일었다.

토론은 상호작용적 (Interactive) 이다.

후보가 잘하면 토론자들도 잘한다.

김대중 (金大中).김종필 두 후보와의 토론이 활기있게 진행된 것은 그들의 답변이 거침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후보가 이 토론에서 득점을 많이 한 것은 난이도 (難易度)가 높은 질문을 잘 받아낸 결과다.

언제나 단조로운 톤으로 말하는 이회창 (李會昌) 후보와의 토론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질문이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토론에서 그건 논리의 모순이다.

이회창후보에겐 아들의 병역문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물어도 가치판단이 들어간 질문이다.

김대중후보에겐 노태우씨한테서 받은 20억원에 관한 질문이 그렇다.

토론자는 모든 후보에게 같은 수준, 같은 강도 (强度) 의 질문을 해 공정성에 '최선' 을 다하는 것 이상 방법이 없다.

TV토론의 근본 문제는 후보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하는 합동토론의 실현과 선거운동이 언론사들의 자의 (恣意)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후보들의 정견 (政見)에는 허점이 많다.

이회창.이인제.조순 세 후보의 외교.통일 분야의 준비 부족, 김종필후보의 내각제 과대 포장, 남북관계를 1년 안에 개선하겠다는 김대중후보의 믿지 못할 장담, 조순후보의 경제 편중은 앞으로의 토론에서 추궁이 요구된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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