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7년 아직 먼 '동-서 통합'…제도는 통일 마음은 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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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독일이 통일된지 오늘로 만 7년이 지났다.

7년새 옛서독 정부는 2조마르크 (약 1천20조원)가 넘는 돈을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쏟아부었다.

법적.제도적 통합도 그동안 거의 마무리됐다.

그러나 옛동독지역의 경제력이 옛서독지역과 어깨를 같이 하기는 서독의 2배를 넘나드는 동독지역의 실업률만 봐도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사회적 갈등도 적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는 서로를 비난, 강화해야 할 연대감을 상처내는 일도 적지 않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반도의 통일이 갈수록 우리에게 실체화되는 시점에서 다시 통독 7년의 과정과 결과를 되짚어본다.

독일 베를린 쾰른공원에서는 지난달 19일 이색적인 '인력증시 (證市)' 가 하나 섰다.

아시아시장 전문가들을 모집한 행사로 여기에는 옛동독시절 아시아국가와의 대외무역에 종사했던 전문인력 수백명이 응모했다.

2만2천명에 이르는 동독출신 아시아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지어 구사능력이 뛰어나고 현지사정에도 밝은 고급인력이다.

그러나 동독의 대외무역회사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각종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독일통일이후 밝혀지면서 이들은 대부분 직장을 잃었다.

인력증시에 나온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람들로 이날 상당수가 고용계약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전체 취업수요에 비하면 이들이 전문분야를 살려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통일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동독주민들은 7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구직난에 허덕이는 아시아무역전문가들처럼 그 어느때보다 실의에 빠져있다.

통일만 되면 서독과 어깨를 나란히 해 살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화되기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 10월3일 독일통일이후 지금까지 법적.제도적인 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동.서통합이 이뤄졌다.

자유와 법앞에서의 평등, 민주주의의 원칙등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독주민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좀처럼 정상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동독지역 (신연방주) 의 경제난과 고실업률이다.

지난 8월말 현재 독일전체의 실업자는 4백37만2천명이며 11.4%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동독지역은 전체평균보다 훨씬 높은 18.3% (실업자 1백38만명) 다.

일시적인 고용창출 프로그램등에 힘입어 실업자 신세를 간신히 모면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실업률은 40%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신연방주 기업들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는 아직도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어려운 독일의 재정상황을 고려해보면 동독지역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과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동독주민들의 경제.심리적인 박탈감은 사회불안과 내적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동독인들의 상당수는 실제로 2등국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장벽이 무너질 당시만 해도 형제애에 충만했던 동.서독인이었지만 지금은 연대감이 상당히 엷어졌다.

잘못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오히려 강화돼야 할 연대감에 상처를 내기가 일쑤다.

여론조사결과 실업자등 통일로 실질적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조차 '오씨' (동독주민을 낮추어 부르는 말) 와 '베씨' (서독주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7년전 통일직후에 비해 더 깊어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많은 동독인들은 독재체제아래서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그때는 '완전 고용, 완벽한 탁아소시설, 범죄없는 세상' 이 이뤄져 있었다는 생각이다.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점차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옛동독출신 지식인중 일부는 베를린장벽 붕괴 당시 자체개혁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지 않고 왜 단숨에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을 택했는지 후회도 하고 있다.

이같은 좌절감을 배경으로 옛서독지역에선 거의 존재조차 없는 옛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 (PDS)에 대한 옛동독주민들의 지지도가 20%선을 넘고 있다.

지난달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새 연방하원의사당 (옛제국의회) 의 상부원형구조물 상량식과 총리청사 기공식이 있었다.

본에 있는 연방의회와 정부는 늦어도 오는 99년말까지는 베를린으로의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베를린은 역사적 통일을 성취해낸 독일이 21세기 중흥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같은 재도약이 가능해지려면 동.서간 완전한 내적 통합이 완성돼야 한다는게 통일 7년을 맞은 대다수 독일 국민들의 생각이다.

베를린 = 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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