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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난 가짜 아니다” … 안기부 KAL기 조작설 정면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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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가짜가 아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은 북한의 테러임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18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폭파범 김현희씨가 항간에 유포된 폭파사건의 조작설을 일축했다. 김씨는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의 가족들과 만난 뒤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20년이 지난 사건을 누가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의심받는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노태우 후보에 유리하도록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공산주의 과민반응)를 자극하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일으킨 자작극이란 소문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가짜가 아니다”는 김씨의 발언은 “내가 진범임에 틀림없으니 제발 믿어 달라”는 하소연으로 들렸다.

①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中)가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김현희씨(右)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다구치는 북한에 납치된 후 김씨와 함께 살며 김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은 다구치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②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범인으로 체포된 김씨가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모습.③1978년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의 모습. 당시 22세였다. 사진공동취재단, [중앙포토]


김씨는 지난해 말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대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대한항공기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TV에 출연해 사건 진상과 다른 발언을 하도록 국정원 관계자가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날 회견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국정원에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 중이라니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한항공기 유가족들을 만날 의향은.

“97년 수기를 출판해 받은 인세를 전달하면서 유가족들을 만난 일이 있다. 그때 서로 많이 울었고 ‘잘 살라’고 했다. 유가족의 다수는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한다. 일부가 증거가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다. 북한 테러사건임을 인정하면 만날 수 있다. 북한이 작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됐을 때 환영한다고 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KAL기 사건도 묵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97년 결혼하고 사회와는 거리를 둔 채 돌아가신 분들의 아픈 마음도 헤아리며 조용히 살아왔다.”

-다구치의 소식을 들은 게 있나. 한국인 납북자와 결혼했다는 정보도 있는데.

“사망한 것은 아니고 (원래 있던 초대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고 87년 마카오에서 해외실습을 마치고 북한에 돌아가서 들었다. 86년에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상대방이 한국인 납북자란 얘기는 들어본 일 없다.”

-납치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견해는.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일본 정부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던 테러지원국 해제도 이뤄졌으니 납북자에 대해 죽었다고만 주장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북·일 관계가 개선되는 것이 북한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산=예영준 기자

◆대한항공기 폭파사건=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공중 폭발한 사건. 한국인이 대부분인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바레인에 내린 김승일은 체포되자 독극물 앰플을 깨물고 자살했으며 김현희는 서울로 압송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면됐다. 이 사건을 이유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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