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괴물로 변하게 된 과정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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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사망한 노동운동가 권용목(52·사진)씨는 민주노총의 부패와 비리를 정면 겨냥한 ‘유작’을 남겼다.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라는 책이다. 고인은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었다. 권씨는 이 책을 함께 쓴 동료들과 원고를 최종 검토하는 워크숍을 떠났다가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동료들은 당시 고인이 원고 정리 때문에 열흘 가까이 잠을 설치며 과로에 시달렸다고 전한다.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권용목씨는 이 책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 비리를 ‘고발’하며 새로운 노동운동을 요구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12일 책을 발간하며 기자회견을 연다. 민주노총의 도덕성과 이념 지향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일 전망이다.

◆법정 공방 벌어지나=고(故) 권씨는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괴물로 변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찾아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1990년대부터 심심찮게 사회면 뉴스에 등장했던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 비리의 전말을 조목조목 파헤쳤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최진학 정책실장은 “민주노총 식의 투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주요한 요소”라며 “민주노총 개혁이 대한민국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 고인의 뜻이었다”고 전했다. 책은 민주노총이 ‘국민을 담보로 하는 협박성 선동과 적개심 불타는 계급투쟁의 쇳소리’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책에 나온 사실 관계를 산하 연맹별로 확인해 허위사실이 밝혀질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책이 과거 일부 노조 간부의 비리를 ‘재탕’할 뿐이며, 현재의 자정 노력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 대변인은 “관련자들이 사건 당시 사법적·사회적 처벌을 받았고, 민주노총 안에서도 최고 징계인 ‘제명’ 조치를 받아 단죄된 사건들을 마치 지금의 일인 양 다시 들추고 있다”며 “여기엔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 세력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뉴라이트 측은 “책에는 전부 ‘사실’만 담겨 있다. 민주노총 측에서 법적 대응을 한다면 노조 비리를 둘러싼 총체적인 진실이 법정에서 밝혀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조 권력화’는 문제=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민주노총에서 보자면 고인이 ‘전향’ 내지 ‘변절’한 인물이겠지만, 사실 진보진영이 좋은 인재를 잃은 것이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노동자 출신의 운동가로서 대학생 출신의 운동가가 보지 못한 현장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전하려 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 대표는 “도덕적인 문제를 들춰내 ‘폭로’하는 방식으로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김일영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는 “지금 한국의 거대 노조는 노동자의 이해보다 노동귀족의 이해만을 따지며 일반 노동자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주장만 펴고 있다”며 “이 책이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전환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장상환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은 “민주노총도 권력화의 부정적 측면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며 “내부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취약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의 문제점에 대해선 철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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