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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영세중립국도 군사훈련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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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처럼 북한이 무언가에 쫓기듯 위기를 조성하는 배경은 우선적으로 한국 사회에 군사적 불안감을 확산시켜 남남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데 있다. 또한 계속되는 경제난과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 및 후계 체제 문제 등과 관련한 내부 단속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한국군이 훈련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우리가 훈련을 하지 않으면 군사 대비태세가 약화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며, 한·미 연합 작전능력도 와해될 수 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60년 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북한의 기습 남침을 받았던 상황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연습 및 훈련이 절대로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훈련하는 것이 위협적이어서 삼가야 한다면 북한군도 일절 훈련을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만 북한군은 최근에도 주민들까지 동원해 강도 높은 겨울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훈련하면서 우리만 훈련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대가 존재하는 한 훈련은 기본이다. 영세중립국도 예외 없이 훈련하고 있다.

 ‘키 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이 방어적 훈련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도 분명해 진다. 첫째, 우리나라 헌법은 평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제5조에서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나라가 왜 침략훈련을 하겠는가?

둘째,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온 국민이 피땀 흘려 괄목할 만한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북한과 달리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잃을 것이 너무도 크고 많다. 이처럼 번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침략전쟁을 왜 일으키려 하겠는가.

셋째, 이번에 실시하는 ‘키 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도 한반도 유사시 방어를 위한 훈련으로서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해 왔다. 훈련 사실도 미리 북한에 알려주었다. 그런데 북침을 위한 훈련이라면 과연 누가 사전에 알려주고 훈련참관 초청까지 하겠는가? 또한 한·미연합군사령부는 훈련 때마다 주한 외국무관단을 참관시켜 왔지만, 참관 후 공격적 연습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넷째,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계승, 남북 간 화해협력, 평화공존, 점진적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가 전쟁을 하기 위한 침략훈련을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어 목적의 한·미 연합 훈련을 떼를 쓰듯 시비를 거는 북한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북한도 이 훈련이 방어적 훈련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속 보이는 행동은 그만 접고 진정성에 입각해 한반도의 평화 상태 구축을 위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자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 상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통 큰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1992년 남북한이 합의한 ‘군사적 신뢰 구축’ 의 추진을 위한 ‘대화의 장’에 나오는 것이 순리다. 그런 점에서 ‘초보적인 군사 신뢰 구축’을 위해 한·미 연합연습 등에 참관할 것을 북측에 제안한다.

북한은 대한민국 군대는 어떠한 도발에도 충분히 방어할 태세가 갖춰진 강한 군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무자비한 군사적 행동으로 대응하겠다’느니, ‘단호한 징벌과 보복 타격을 하겠다’느니 하는 진부한 ‘긴장 조성 전술’을 거둘 것을 충고하고 싶다.

안광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전 국가비상기획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