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뜬구름 잡는 경기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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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환자가 정기적으로 건강체크를 하는 것처럼 우리 경제도 매달 건강진단을 받는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산업활동동향.국제수지동향등이 그것이다.

8월 건강진단서는 '경기침체' 라는 병세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달중에는 병석에서 드디어 일어날 것 (경기회복)" 이라는 소견도 붙어 있다.

정부나 재계 일각에선 한국경제의 기본체력이 기아사태에 따른 충격을 넉넉히 흡수할만큼 튼튼해졌다는 낙관적 진단도 나온다.

기아사태를 비롯해 최근 경기상황의 어려움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환자입장에서 보면 이번 진단에 수긍할 수 없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부도율.실업률 같은 것이 지표와 현실의 괴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8월중 전국 어음 부도율은 0.21%로 전달에 비해 떨어졌고, 실업률 역시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한계기업문제가 해소되고 실업문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말인가.

현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당장 한국경제 전체를 위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기아문제 같은 것은 이런 지표에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오히려 사실상의 부도상태에 빠진 경우들이 잔뜩 널려 있는 상태에서 지표상으로는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디 기아뿐인가.

문제의 위기기업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경우 지금의 경기지표들은 단숨에 추락현상을 보일게 뻔하다.

생산지표도 마찬가지다.

7월중 16.1%나 감소했던 자동차 생산이 8월엔 오히려 8.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도 "기아사태가 생산이나 출하등 경제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없다" 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채권단과 기아측의 힘겨루기가 계속돼 기아노조가 정말 조업을 중단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이것이 금융시장의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경기지표는 진통제등의 대증요법 (對症療法) 이 먹혀들어 환자증세가 겉으로 호전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결코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수출이 늘고, 재고증가가 드디어 숨을 죽이고 감소추세로 돌아선 것등은 반가운 시그널이다.

기업들마다 어느정도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본격적인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일시적인 지표악화를 감수하더라도 경제의 불필요한 군살을 과감히 빼내야 진정한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렬 경제 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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