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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귀파 대 한국 38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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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은 세대교체 중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 관계자들은 가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다. 중국 관리들을 만날 때의 의전에서다. 종전에는 가장 나이 많고 풍채 좋은 공무원을 예우하면 됐다. 대부분 그가 최고위직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오히려 가장 나이가 적어 보이는 사람이 최고책임자인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급류를 타고 있다. '68방식'(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인재를 발탁하는 인사)도 모자라 '79방식'(70년대 출생, 90년대 대졸자 발탁)이 유행이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성과 그 아래 현.시의 요직에 영파워가 속속 진출하고 있다.

젊은 지도층의 무기는 실력이다. 상당수가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명문대를 거쳐 미국.일본.유럽에서 유학 또는 근무경력을 쌓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익숙하다. 현지에선 이들을 해귀파(海歸派)로 부른다. 코드는 '잘 살아보세'다. 조국 중국과 자신의 성공이 목표다. 문회보는 16만명에 이르는 해귀파 중 4만여명이 상하이에 있고, 이들 중 90%가 석.박사며, 30%가 외국에서의 중견관리직 경험이 있다고 전한다.

당초 이들의 주무대는 기업. 한국 경제의 젖줄인 반도체 기술을 코앞에서 위협하는 주력도 해귀파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공정기술은 1년반 만에 0.18미크론, 0.15미크론, 0.13미크론을 차례로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주력기술인 0.11미크론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79년 이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9.4%의 고속성장을 견인하고, 내실을 다져 연착륙하는 데도 해귀파는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 주식회사의 새 엔진이다.

우리에겐 라이벌이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중국 시장이 지금은 한국 경제에 기회가 되겠지만 미래에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7년 수준인 양국의 기술격차가 좁아져 5년 후엔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를 지배할 가능성도 이 신문은 배제하지 않았다.

최근 해귀파의 공직 진출은 봇물을 이룬다. 99년 38세의 나이로 광둥성 윈푸시장에 임명된 정리핑은 미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학원을 나왔다. 정 시장은 산골의 작은 도시 윈푸를 성 내에서 재정수입 증가폭이 가장 높은 곳으로 바꿔놓았다. 국무원의 저우지 교육부장(장관)도 해귀파, 특히 미국에서 유학한 류메이(留美)의 대표주자다. 미 MIT에서 수학하고, 포털사이트 'Sohu'를 운영하는 38세의 장차오양 사장은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유치에 공헌했다. 지난해 말 상하이시 공무원 임용시험엔 178명의 해귀파가 응시했다.

세대교체 바람은 한국에서도 분다. 국회를 보자. 17대 초선의원은 187명.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386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재야활동 경력이 있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도 많다. 도덕성이 강점이다. 코드는 개혁. 몇몇은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386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요직에도 대거 진출 중이다.

문제는 경쟁력이다. 한국의 386 리더가 중국의 해귀파를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느냐다. 청와대에 가서 '산 자여 따르라'를 노래하고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면 경쟁력이 확보되느냐 하는 점이다. 중요한 문제다. 이들이 경쟁에서 이기고 3% 안팎의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소득 2만달러, 3만달러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386의 어깨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과연 우리의 386 리더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한편으론 궁금하고 한편으론 두렵다.

김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