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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뉴욕 공연보고 충격…7번 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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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배우 최정원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를 일깨웠다"며 "무대 위의 나를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게 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쇼가 아니에요. 자아를 일깨우는 거울이죠."

꼭 6년 전이다. 배우 최정원(35)은 뉴욕으로 갔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해외 공연을 위해서였다. 밤이 되자 그는 브로드웨이를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극장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봤다. 그리고 큼지막한 해머로 가슴을 "꽝!"하고 얻어맞는 충격을 받았다.

뉴욕에 머물던 짧은 기간에 그는 '지킬 앤 하이드'를 무려 일곱번이나 봤다. 당시 회당 입장료만 85달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라 환율은 높았다. 출연료를 몽땅 쏟아부었다. 그때 그는 '나는 누구인가''배우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들고 한창 씨름하고 있었다. "공연을 보는데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내가 쓰고 있던 수많은 가면을 돌아보게 했죠."

귀국해서도 '지킬 앤 하이드'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수소문해 악보를 구하고 노래를 모두 외웠다. "한국에서 쌓아 놓은 지명도를 포기하더라도 뉴욕으로 갈 작정이었죠. 오디션에 참석하려고요. '내 안의 나'를 일깨웠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뉴욕행은 좌절됐다.

그래도 '지킬 앤 하이드'는 죽지 않았다. "그때부터 각별한 습관이 생겼죠." 새로운 공연이 올라가는 전날 밤이면 그는 식구들이 잠들길 기다린다. "그러곤 누워서 눈을 감죠. 나는 객석에 앉아 있어요. 또 다른 내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있고요." 나를 벗어난 내가 공연을 보는 식이다. 대사 하나부터 침묵의 길이까지 실제 상황과 똑같이 재연된다.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죠. 막을 내릴 땐 진짜 공연처럼 몸이 부르르 떨리니까요."

그는 "내 속에는 수백명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역을 맡으면 모두를 죽이고 하나만 살린다고 했다. "배역을 하나씩 끄집어낼 때마다 산고(産苦)를 치르죠. 아이를 낳을 때와 똑같아요." 애정이 없을 리 없다. 자신이면서 또 자식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면 그 배역을 버려야 해요. 일말의 찌꺼기도 없이 철저하게 비워야 하죠." 조금만 남아도 곤란하다. 다음 배역에서 어김없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6년 만에 진짜 '지킬 앤 하이드'가 찾아왔다. 7월 24일~8월 21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국내 초연되는 '지킬 앤 하이드'(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루시역에 캐스팅됐다. 애초에 그는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토요일밤의 열기'의 제작자이자 연출가인 윤석화 대표에게 양해를 구했다. 윤 대표는 "같은 배우로서 그 절실한 심정을 안다"며 흔쾌히 '지킬행'을 허락했다. 5만~9만원. 02-556-8556.

백성호 기자<vangogh@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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