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모델로 삼고 있는‘의료 허브’싱가포르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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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네덜란드다. 아시아의 의료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나 태국도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이다. 전체 병상의 13%가 영리병원이다. 미국의 영리병원은 철저한 경쟁논리에 따라 운영된다. 경쟁 덕분에 치열교정 전문 기업인 OCA 같은 데는 진료비가 민간보다 쌀 때도 있다. 영리와 비영리병원의 기능상 차이는 별로 없다. 오히려 영리병원이 적자경영에 시달리기도 한다. 메이요 클리닉 등 미국 대부분의 병원은 비영리법인이다. 비영리 병원은 세제나 기부금 등 혜택을 받는다. 미국은 민간의료보험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영리병원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는 전체 병원의 5% 정도가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공공병원이 채워주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높은 진료비를 받고 개인병상 등 고급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한 예다. 유럽의 의료는 국가가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지만 환자가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는 등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높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등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은 나라에서도 일부 병원의 영리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 병원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했다. 유럽은 경쟁 없는 공공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했다. 경쟁 원리를 도입해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의도에서다.

미국이나 유럽의 영리병원 시스템은 한국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모델로 삼는 데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의료서비스 산업을 국가과제로 정하고 공공병원과 영리병원의 역할을 구분했다. 국공립병원은 중증환자 진료의 80%를 담당하는 공공기능을 하도록 했다. 반면 주식회사 병원을 도입해 의료 관광, 프랜차이즈 사업, 건강식품 판매, 해외환자 유치 등의 사업을 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상당수 싱가포르의 영리병원들은 상장돼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한국의 의료체계가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 있다. 한국 건강보험은 전체 진료비의 65% 정도만을 보장한다. 싱가포르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윤태 의료산업팀장은 “영리병원은 나라별 의료정책 목표에 맞는지를 따져서 결정할 일”이라며 “공공의료의 보장성 등 의료 환경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공공의료과 손영래 과장은 “영리의료법인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으려면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의료비 비율(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공적의료보장 수준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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