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가장 오랜 ‘동물 친구’ 잠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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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동물 중 국내 동물원에서의 생활 기간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자이언트’(사진)가 8일 오후 숨졌다. 한국에 온 지 54년 만에, 5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코끼리의 장수 수명이 60세인 것을 감안하면 백수(白壽)를 누린 것이다.

자이언트는 1955년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태국에서 들여와 창경원에 기증하면서 한국 땅을 밟았다. 84년 서울대공원이 생기면서 과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겼으며 익살스러운 행동과 기행(奇行)으로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이언트는 태국에서 같이 온 ‘태순이’와 합방은 했으나 잠자리는 같이하지 않았다. 89년에는 ‘태순이’를 웅덩이로 떠밀어 숨지게 했다. 혼자 살던 자이언트는 2007년 일본 동물원에서 이사 온 ‘사쿠라’와 잠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애정을 표현하다가도 돌변해 사쿠라를 공격하는 변덕을 부렸다.

자이언트는 다른 코끼리와 달리 앉아서 쉬거나 누워서 자지 않고 평생을 서서 보냈다. 박광식(31) 사육사는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이 오래 몸에 밴 탓에 계속 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이언트는 사육사나 수의사가 접근하는 것도 꺼렸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땅에 코를 쿵쿵 박으며 위협했다. 사육사는 방에 먹이를 두고 나온 뒤 배변을 통해 자이언트의 건강을 보살펴야 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자이언트는 사육사와 수의사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허락했다.

자이언트의 까칠한 성격은 관람객을 대할 때도 드러났다. 큰 소리를 지르는 관람객이 있으면 딴청을 부리다 관광객의 얼굴에 갑자기 흙을 뿌렸다. 그러다가도 막상 관람객이 떠날 땐 돌멩이를 던져 관심을 유도했다.

자이언트는 동물원의 인기 스타였다. 특히 거목을 코로 돌리는 데 선수였다. 다른 코끼리와 달리 야외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며 코로 물을 뿜어내는 장기도 선보였다.

자이언트의 식성도 남달랐다. 하루 평균 82㎏의 건초와 야채를 먹었다. 평생 먹은 것을 계산하면 174만㎏으로 사료 가격만 12억원이 넘는다. 배설량은 2.5t 트럭 846대 분량인 211만7천㎏으로 집계됐다.

서울대공원 측은 대공원의 역사와 함께해온 자이언트를 화장하지 않고 묘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대공원에서 죽은 동물은 부검 후 동물병원 1층 소각장에서 화장하는 것이 관례지만 자이언트만큼은 그동안 살던 방사장에 묻기로 했다. 자이언트의 뼈는 12년 후에 발굴돼 골격 표본으로 만들어진다. 동물원 측은 동물위령비 옆에 별도의 추모비를 세워 자이언트를 기리기로 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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