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마장의 스탬피드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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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도 과천 경마장에서 부모를 따라온 한 어린이가 식당안의 가스통 밸브를 건드려 가스가 누출되자 가스가 폭발한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관람객들이 대피소동을 벌이다 1백50여명이 다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경마장에서는 지난해에도 소화기에서 소화액이 분출되자 놀라 급히 대피하던 관객 3백여명이 부상했었다.

후진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적 스탬피드 (놀라 급히 달리기) 사고가 반복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은 경마장측의 허술한 안전관리에 있다.

다중 (多衆) 이 몰리는 시설이라면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에 허술함이 없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작년에 비슷한 사고를 당하고도 탄산가스통을 어린이가 만질 수 있는 곳에 놓아뒀다는 것은 안전관리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시설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장소라면 당연히 설계단계에서부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경마장 출입구가 비좁고 부족하니 사고는 예고돼 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관람객들의 질서의식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해 보이던 백화점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등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빈발하는 마당이니 시민들의 경계심이 예민해질만도 하다.

그러나 위급할 때일수록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스유출이 순식간에 건물붕괴로 전파되고, 나만 먼저 살겠다는 동물적 본능만 앞세우면 더 많은 희생을 낼 것은 뻔한 일이다.

관계당국은 경마장 관계자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시설개선 등 재발방지를 위한 만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조그만 사고에도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백화점.극장 등 다중시설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비상시의 대피요령은 물론 어려서부터 질서의식을 체질화하는 학교교육을 체험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일본의 지진대비훈련이 좋은 예다.

우리는 비단 이번과 같은 단순사고뿐 아니라 각종 재해와 비상사태의 가능성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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