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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조지프 나이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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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미국은 냉전이 끝나고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지금도 동아시아에 10만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가.

한국이 통일돼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미군은 동아시아에서 병력의 전부나 일부를 철수할 것인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따르면 21세기에 들어서도 지금 수준의 미군이 이 지역에 계속 주둔한다.

어째서 그런가.

미국의 장기적인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나이 이니셔티브' 라고 별칭 (別稱) 된다.

하버드대 케네디 정치대학원 학장인 조지프 나이 박사가 국방차관보 시절인 94년 이 전략의 기본틀을 만든 데서 나온 이름이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략을 가장 권위있게 설명할 나이 박사가 중앙일보가 주최한 아시아 신문편집인 포럼에 기조연설하러 서울에 온 기회에 우리가 어떤 안보환경에서 21세기를 맞을 것인가를 들었다.

[편집자]

*김영희 = 나이 박사께선 워싱턴 쿼털리라는 잡지 96년 겨울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냉전이 끝난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가지 유형의 전쟁으로 세계적인 세력균형에 관한 강대국들간의 전쟁, 지역적인 세력균형에 관한 분쟁, 그리고 특정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내전 (內戰) 을 들었습니다.

지금 북한이 맞고 있는 심각한 위기를 생각할 때 한반도에서 분쟁이 재발하고 그것이 지역분쟁과 강대국들이 개입하는 큰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까.

*나이 = 한반도엔 항상 분쟁의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충분한 억지력 (抑止力) 을 유지해 분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방지하고, 일단 분쟁이 일어나면 확대를 막는게 중요합니다.

미국이 한반도와 걸프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전쟁에 개입하는 '윈 윈' 전략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김 = 미국의 전쟁 억지력 말고 한반도 주변의 안정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은 뭡니까.

*나이 = 가장 중요한게 남북관계의 진전입니다.

지금 4자회담의 예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데 남북 관계가 직접협상을 통해 기본합의서에 서명한 91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아세안 지역포럼 (ARF) 같은 지역안보체제도 유익합니다.

그리고 아직 중국이 망설이고 북한이 반대해 진전이 없지만 동북아시아 안보에 관한 대화기구가 필요해요. 한마디로 군사적인 억지력을 외교로 뒷받침해야 해요. *김 = 한국이나 일본.중국과 비교해 동남아 국가들이 느끼는 안보상의 위협은 아주 적은데도 아세안 지역안보체제 같은게 실효를 거둘까요.

*나이 =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동남아 국가들에도 불안은 있어요. 난사 (南沙) 군도의 경우를 봐도 6개국이 분쟁에 휘말려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해저유전이라도 개발되면 분쟁의 악화는 확실합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미 민감하게 대립하고 있어요. *김 = 북한과 관련된 최근의 사태를 보면 한편에선 4자회담이 걸음마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식량난이 악화되고 황장엽 (黃長燁)에 이어 이집트대사 장승길 형제 일가족이 망명해 북한의 국제적 위신 추락이 보통이 아닙니다.

나이 박사의 전망대에서 보는 북한은 지금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겁니까. 북한은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같습니까.

*나이 = 북한은 단계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이 하룻밤 사이에 붕괴되지도 않고 지금의 정권이 5년 또는 10년 이상 유지될 것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김 = 북한의 변화라면 김정일 (金正日) 입장에선 나쁜 변화를 의미합니까.

*나이 = 한국과 미국에는 좋은 변화를 말합니다.

*김 = 북한이 살아날 길이 있다면 뭡니까.

*나이 = 당장 식량위기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 경제체제가 실패작이라는걸 인정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마지막으로 정치개혁을 하는 3단계 조치가 필요합니다.

*김 = 미국 국무부의 새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한 스탠리 로스는 북한의 연착륙을 지원하는 미국의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미국은 연착륙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의 추락 (붕괴)에 대비하는 겁니까.

*나이 = 북한이 당장 붕괴할 위험은 항상 있습니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서울과 한국 전역에 엄청난 피해를 줄 폭력을 동반할 위험을 안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연착륙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가지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직접대화에 응하도록 지원해 남북관계를 91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남북한이 연합 (confederation) 을 구성, 그 틀 안에서 북한이 다원주의체제로 변화해 거기에서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건 물론 낙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맞는지,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맞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두가지 모두에 대비해야 합니다.

*김 = 북한에서 망명해 오는 요인들은 북한이 일으킬 전쟁 가능성을 거듭 경고합니다.

*나이 = 북한이 힘이 없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해요. 때때로 절망한 사람들은 남이 보기에 정상이 아닌 행동을 합니다.

그들에겐 그게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12층의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그 맨 위층에 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뛰어내리면 살아날 확률이 10분의1입니다.

거기 있으면 구조될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 사람에겐 아래로 뛰어내리는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북한이 바로 그 사람의 처지에 있어요. 우리는 북한에 그들이 절망적인 행동을 취하면 생존 가능성은 열에 하나도 없다는걸 납득시켜야 해요. 그래서 군사적 억지력 못지않게 대화가 중요합니다.

*김 = 북한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많이 다릅니까.

*나이 = 단기적으론 차이가 없어요.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걸 바라지 않고 북한에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이 한국의 통일을 바라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한국의 통일이 미국의 장기적 이해와 일치되는데 중국의 입장도 그런지 나는 모릅니다.

*김 = 나이 박사께선 중국을 궁지에 모는 봉쇄정책에 반대하면서도 21세기에 들어서면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불길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력에 걸맞은 발언권을 요구하고 나서면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이 무너질 위험은 없나요.

*나이 = 미국의 전략에 크게 좌우됩니다.

이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일본과 다른 국가들이 흔들리고 균형이 깨집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 계속 남아있으면 중국이 균형을 깰 수 없어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깊이 참여시키는 전략 (engagement) 이 바람직합니다.

*김 = 한국 같은 나라는 중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합니까.

*나이 = 미국.일본, 그리고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공조 (共助) 해 중국이 책임있게 처신하면 존경을 받고 주변국가들을 위협하면 외교적으로 비싼 대가를 지불할 것임을 납득시키는게 중요합니다.

*김 = 한국은 2개의 핵보유국을 포함한 3개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 한국이 21세기에 갖출 적정선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국방의 개념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나이 = 역사적.지정학적으로 한국은 항상 강대국을 이웃에 두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 강대국과 동맹을 맺으면 그 강대국의 지위는 더욱 강화돼 한국에 간섭을 합니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미국은 한국을 휘두를 위험 없이 2개 또는 3개의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한국을 지킬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갖는 것이 정답이라 하겠습니다.

*김 = 21세기의 전략환경에서 군사력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나이 = 우리는 집에 불이 날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화재보험에 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쟁을 기대하지 않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기 때문에 일종의 보험으로 군사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군사력은 21세기에도 중요해요.

*김 =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앞으로 일본이 미국 - 일본 - 중국의 삼각협력체제의 한 축을 맡는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같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경제적 협력관계를 맺은 뒤 다시 그 두 나라가 미국과의 협력관계로 확대시킨다는 것같습니다.

이들 세나라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그게 실현 가능한 구상입니까.

*나이 = 표현이 삼각협력체제일 뿐이지 실제로는 경제적으로 볼 때 한국이 중요해지고 10년 이상 지나면 러시아가 경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다른 동아시아국가들의 경제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3각형으로는 이 지역의 경제적인 기하학을 담아낼 수 없어요.

*김 = 머지않아, 아마도 금명간 미국과 일본은 21세기 두나라의 안보관계를 규정하는 방위지침이란 것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 몇가지 묻겠습니다.

방위지침의 지리적 적용범위가 모호한데 누구를 상대로 누구를 지키자는 겁니까.

*나이 = 방위지침은 어느 특정한 나라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지역을 적용범위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적용대상이나 범위보다 미.일 안보협력의 기능에 관한 겁니다.

러시아가 다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고 북방영토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 방어에 적용될 수 있고, 일본이 평화유지군에 참가하는 문제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김 = 적용범위도 없고 가상 적국도 없는 방위지침이 유사시에 쓸모가 있습니까.

*나이 = 있지요.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를 가정합시다.

일본의 사령관이 미군으로부터 특정한 병기의 공급을 요청받습니다.

그 요청은 일본 정부에 전달되고 일본 의회는 승인절차를 밟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되면 전황 (戰況) 은 상당히 진전됩니다.

그런 사태에 대비해 미리 지침을 확정해 두어 요청받은 병기나 다른 물자를 즉각 제공하는 길을 열어두자는 겁니다.

*김 = 일본과의 협상에 나이 박사께서 직접 참여했습니까.

*나이 = 협상은 내가 국방부를 떠난 뒤 진행됐고, 나는 그 준비에만 참여했어요.

*김 =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미국은 지체없이 일본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나이 = 그점은 분명합니다.

*김 = 군사대국이던 소련도 붕괴하고 북한도 군사적 모험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게 현실인데 굳이 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주변국가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이 = 일본에 확신 (reassurance) 을 주기 위한 겁니다.

일본이 위협받을 경우 미국이 즉각 일본을 지원한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일본이 재무장해 이웃나라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없게 하자는 거지요.

*김 =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 박장희 경제부기자,사진 = 김진석 기자]

[만난사람=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약력]

^60세^프린스턴.하버드.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과 철학 전공^하버드대 교수.군축협상 대표와 국방차관보 역임94년 '동아시아 전략보고서 (Nye Initiative)' 작성 주도^95년말부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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