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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머무는 공간 ⑤주유소가 있는 건물 서울석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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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31면

①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옆에 주유소 건물이 있다. 건물 외벽이 철사망으로 둘러 쳐져 있다. 건물의 색감이 철망에 반사된 빛의 방향과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②7층에서 본 유리 터널. 바닥판 아래로 6층 사무실 일부가 내려다보인다. ③건물 6층 밖으로 액자같이 뚫린 터널로 경동교회와 주변 풍경이 보인다. 신동연 기자·건축사 사무소 O.C.A

1990년대 초반 주유소의 거리제한 제도가 폐지됐다. 우리나라 대도시에는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유소가 있다. 그만큼 지하 생태의 손상과 재해의 가능성도 커졌다. 주유소는 운전자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지만 도시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삭막해 보이는 사막과 같은 존재다.

주변과 다르되 경쟁하지 않는 주유소의 도시 미학

도심의 주유소들은 대개 큰길가에 놓여 있다. 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매우 비싼 땅을 점유하게 된다. 장충동에서 수십 년간 영업을 해온 서울석유는 주유소를 유지하면서 땅의 개발 잠재력을 살리고자 했다. 안전에 관한 여러 법규에 맞추어 건축을 했고 옥내 주유소와 함께 주차장·오피스·상업시설을 두었다. 서울과 같은 고밀도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복합용도 건축이다. 건축가 임재용은 이를 일상적이면서도 극적인 모습으로 실현시켰다.

서울석유의 1, 2층 공간은 주유소, 3층은 실내 주차장이다. 4, 5층은 각각 인테리어 디자인과 광고기획 회사가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임대료가 주위 건물보다 비싼 편이다. 6, 7층은 이 집의 건축주인 서울석유가 본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주유소의 지하는 유류 저장 탱크를 두기 때문에 지하에 거주 공간은 없다. 이 집은 주유소·주차장·임대사무실·본사오피스 이렇게 크게 네 개의 서로 다른 공간과 쓰임새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건물 안 들어서면 주유소 느낌 사라져
집에 들어가 보자. 세차장 출구와 주유 정차 공간 사이에 1층 출입구가 있다. 건축가의 디자인은 그 어떤 주유소에서 볼 수 없는 정제된 힘이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주인인 주유소 공간의 소음과 공해, 그 혼잡함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다른 세계에 들어선다. 풍요로우면서도 차분한 건축 공간과 재료의 질서가 감각을 만족시킨다. 안락하고 세련된 사무실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막 위에 지어진 집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 주유소로 나가는 순간 다시 도시의 황량함에 충격을 받는다. 왜 이렇게 쉽게 내 발밑을 망각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의아스러울 정도로 간단하다. 우리가 매일 밟고 있는 수평 바닥판 때문이다. 소음·냄새·진동의 문제만 없다면 콘크리트 바닥은 위아래로 향한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한다. 위와 아래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쉽게 없어진다.

도시의 고밀도, 고층의 삶은 수평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위아래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수평 바닥판 사이에서 하늘을 쳐다볼 일도 없고 땅을 내려다볼 필요도 없다. 우리의 시선과 관심은 언제나 수평에 놓여 있다. 전망이 확보되고 있는가, 남이 나를 쳐다보는가, 도시에서 귀한 해와 바람이 창을 통해 잘 들어오는가. 위아래에 이웃을 두지 않는 도시적 삶의 양상이다. 대도시의 어느 건축처럼 서울석유 사옥에서도 수평 바닥판이 지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7층은 서울석유라는 커뮤니티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건축가는 바닥판에 의해 분리돼 있는 두 층을 이어주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건축가 임재용은 7층의 바닥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유리 터널을 만들어 두 층을 엮어 주었다. 6층과 7층의 위아래가 열릴 뿐만 아니라 이 두 층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정한 시선을 공유하게 된다. 6층으로 뚫린 구멍은 바로 이웃 건물인 경동교회를 창틀 안에 넣었다. 7층으로 뚫린 터널의 다른 한쪽 끝은 하늘과 구름을 액자에 넣었다. 복합적인 요소와 활동이 이루어지는 이 건물에서 6, 7층을 사용하는 서울석유 식구가 공유하는 하나의 중심이다. 수평의 논리를 거역하는 기울어진 조형이자 사회적 매개체다. 유리 터널은 즐거운 형태이면서 아주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 외벽 커튼처럼 두른 거친 철망
서울석유의 이웃인 경동교회는 교회 자체만큼 그 건축도 잘 알려져 있다. 거친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과감한 조형,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고 김수근이 만든 서울의 지표다. 임재용이 설계한 주택들은 일반적으로 훨씬 파격적인 형태를 갖는다. 하지만 서울석유의 외관은 단순하다. 복합적인 기능으로 구성돼 있는 서울석유 사옥은 그 사실을 건물의 외관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건축가는 오히려 철망사를 외관에 둘러 의도적으로 간단하고 균질한 상자의 느낌을 부각했다. 건물의 복합적 구성 위에 얇고 반투명한, 그러면서도 터프한 재료의 커튼을 친 것이다. 일반 오피스의 유리면은 경박할 수 있어 경동교회의 이웃으로 부적절하다는 건축가의 판단은 탁월했다.

경동교회의 벽돌에 대응하는 재료로서 거친 철망을 선택한 것이다. 임재용은 김수근과는 전혀 다른 시대와 전혀 다른 기능의 건물을 바로 옆에 설계했지만 이들은 재료의 힘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 철망은 공장용 컨베이어 벨트에 사용되는 대량생산 재품이다. 길거리에서 서울석유 사옥을 바라볼 때 방향과 거리에 따라 철사망의 패턴이 달라진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건물 내부의 조명에 따라 철사망이 따뜻한 빛을 발하기도 하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 안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철망은 도시의 풍경을 조율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경동교회의 불투명한 무거움에 서울석유는 반투명한 가벼움으로 대응했다. 굵고 직설적인 경동교회의 조형에 한발 물러서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지키고 있다.

임재용은 무엇보다 바로 옆에 있는 경동교회와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도시 전체에서 이 건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친지가 아니더라도 공공의 법과 윤리에 기반을 두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이다. 주유소는 우리가 원하는 이웃은 아니지만 그 존재는 하나의 도시적 현실이다. 도시의 또 다른 요소다. 서로 다른 도시의 요소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면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 도시적 삶의 기본이 아닌가.

대도시의 건축은 도시의 거주자들에게 시골의 푸근함과 향수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다. 대도시의 건축은 사막을 오아시스로 만들지는 않는다. 불안한 것을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하지 않는다. 대도시의 건축은 도시적 삶을 위장하지 않지만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이 건축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도시적인 긴장감의 미학, 일상성의 거친 미학이다. 이것이 거대 도시, 메트로폴리스의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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