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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승길대사 미국 망명 한달…CIA 독점관리 근황도 1급비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 장승길 일행이 미국에 망명한지 22일로 한달이 됐다.

미 국무부는 장대사가 미국 도착후 망명을 신청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적절한 망명허가 절차를 곧 밟아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근황조차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장대사 일행이 전적으로 미 중앙정보국 (CIA) 장악하에 조사를 받고 있으며 국무부도 '필요한 경우 제한적인' 내용만을 전해 듣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우리측의 한 관계자는 미 정보당국이 장대사의 일부 진술내용을 검증하는 과정과 관련해 우리측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북한은 장대사 망명 사건이 터지자 지난달 말 일방적으로 미사일협상을 무기연기하면서 이 문제의 '정치적 해결' 을 요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장의 망명을 통해 북한 미사일 판매에 족쇄를 채울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란.이라크.시리아등 북한제 미사일 수입국의 공격 체계를 파악할 수 있게 돼 클린턴 행정부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 (MTCR) 정책에 추진력을 더하고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의 군사적 대응체계를 마련해주는 일대 전기가 될 수 있으리란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북한 미사일 개발 현황 ▶권력 핵심부 동향 ▶북한의 중동.아프리카비동맹 외교실태등에 대한 값진 정보를 기대할 만하다.

각급 정보.공안 기관 전문가들이 새롭게 전하는 정보와 전언.추론을 바탕으로 장대사 망명전말을 재구성해 본다.

[포 섭]

"움직이는 정보 보고 (寶庫) 를 잡아라. " 장대사는 94년 7월 이집트에 부임하면서부터 정보기관의 표적이 돼왔다.

북한의 대 (對) 중동 스커드미사일 판매의 핵심고리였기 때문이다.

CIA와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특별팀을 구성, 밀착 감시했다.

특히 북한제 미사일을 코앞에 둔 이스라엘에 장의 정보가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장대사의 약점을 가장 먼저 포착, 공작을 편것은 모사드로 알려졌다.

95년께다.

이집트 외국어학교에 다니는 차남 철민 (19) 군이 마약에 손을 대고 필리핀 여자와 사귀는 것을 알아챈 것. 이후 모사드가 바짝 달라 붙었고 철민군은 96년 8월25일 잠적했다.

철민군은 한때 우리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이스라엘에서 모사드의 보호를 받다가 캐나다로 건너갔다.

철민군 잠적 후 장대사 망명 공작의 중심은 모사드에서 CIA로 넘어갔다는 게 정보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집트나 여타 중동국가와의 관계를 고려, 모사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미.이스라엘간에 형성됐다는 것이다.

CIA와 모사드의 '2인 3각' 행보다.

장대사는 이 와중에도 미사일 판매를 위해 한달에 두번 꼴로 평양을 드나들었다.

장대사의 역할은 판매 알선 창구. 실제 판매 협상은 인민무력부 산하 용악산무역회사 대표가 맡았다.

CIA가 장대사와 직접 접촉, 포섭에 성공한 것은 올 3~4월께로 알려졌다.

다만 CIA가 직접 나섰는지 국제적 망명조직이나 에이전트를 내세웠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장대사는 아들 문제 외에 한국.이집트간의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과 부진한 식량외교로 곤경에 처하면서 자연스레 공작망에 걸려 들었다.

[망 명]

CIA에 포섭된 뒤 장대사는 미국 망명을 스스로 타진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장대사는 귀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망명을 적극 타진했던 것으로 안다" 며 "CIA는 더 많은 '정보 보따리' 를 요구하며 그의 망명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 전했다.

망명을 앞두고 장대사와 CIA간에 일종의 줄다리기가 벌어졌음직하다.

장대사는 이때 형인 파리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장승호 (51) 참사관의 동반망명을 요구했다.

혼자 망명할 경우 장승호가 소환될게 불보듯 뻔한 탓이었다.

더구나 장승호는 사업 실적이 부진했던데다 대표부 공금 횡령 혐의도 받아온 터였다.

프랑스 정보기관은 이와 관련, 최근 우리측에 '장승호 파일' 을 보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망명의 D데이는 장대사 형제 모두 22일로 알려지고 있다.

장대사는 카이로 주재 미대사관으로 피난했다.

형의 경우 프랑스의 어디에 머물렀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이 주재국인 이집트와 프랑스 정부가 확인하는 망명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집트와 미국간에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았느냐는 소문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장대사는 미군기지가 있는 지중해상의 몰타를 거쳐 워싱턴에, 장참사관 일행은 밴을 타고 벨기에로 나와 워싱턴에 도착했으며 철민군은 미리 워싱턴에 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핵심 관계자는 "유럽과 중동에는 CIA의 아지트가 많이 있다" 며 "북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두 지역에서 이들을 빼돌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장대사 망명 직전 북한이 이집트에 지어준 '전쟁기념관' 의 그림을 보수한다며 군사요원 35명을 파견한 점이다.

북한이 장대사 망명의 낌새를 눈치채고 군사요원을 위장 파견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워싱턴 = 이재학 특파원.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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