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55년 만에‘국회의장 징계안’ 나왔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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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유진산 민국당 의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이란 한탄도 나왔다. 이기붕 국회의장에 대한 징계 동의를 호소하면서다.

이기붕 의장은 이른바 ‘사사오입(四捨五入·반올림)’ 개헌을 주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만들어 본회의 표결에 붙였다. 재적 의원 203명 중 찬성이 135명에 그쳐 의결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인 136명)를 넘기지 못했다. 현장에선 부결로 선포도 됐다. 하지만 이 의장과 자유당은 생떼를 썼다. 3분의 2면 135.33으로 반올림하면 135명이란 것이다. 개헌안이 통과됐다는 주장이었고 결국 공포까지 됐다. 이 의장에 대한 징계안은 그러나 부결됐다. 174명 중 찬성이 66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공유하게 됐다. 민주당이 6일 김 의장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면서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징계안의 대상이 된 거다.

사실 의장에 대한 불신임 또는 사임 결의안은 제법 있었다. 유신시대의 실세였던 정일권 당시 의장을 상대로 한 불신임 결의안은 무려 네 차례나 제출됐다. 정 의장이 본회의에서 5분 만에 70여 건의 안건을 ‘날치기’한 것 등이 문제가 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05년이다. 김원기 당시 의장이 사립학교법안을 직권 상정, 처리한 걸 두고 한나라당이 불신임 결의안을 냈다.

사임 결의안은 67년에 있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가 이효상 당시 의장을 상대로 냈다. 이 의장은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며 신민당이 6개월여 동안 등원을 거부하자 공화당만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법안을 처리한 건 물론 국정감사도 진행했다.

이들 사안에 비하면 김 의장의 사유는 ‘초라’하다. 예정된 본회의를 취소하고 국회의원 보좌진의 본관 출입을 통제했다는 것 등이다. 정치권에서도 “의장까지 정치 공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좀 심했다”는 반응이 적잖다.

김 의장은 6일 오전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럴 수가 있느냐. 징계안 제출은 민주당의 잘못을 의장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비열한 처사”라고 강력 항의했다. 정 대표도 “한나라당 말만 듣고 약속을 깬 게 누구냐. 터무니없는 뒤집어씌우기 하지 마시라”고 받아쳤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전했다. 3~4분간의 통화 도중 정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을 정도로 설전은 격앙됐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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