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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취향' 성인들 많아 … 만화그림 인형·소품 애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어린 시절은 즐겁다.

무한한 가능성만 존재하고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는 자유로운 생활, 황당하기까지한 상상도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여겨져 모두로부터 기꺼이 허용된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줘도 고맙다' 며 사랑받는다.

이 즐거운 어린 시절의 상징이 동화 속의 요정 '피터팬' . '영원한 피터팬' 이고자하는 바램은 누구나 한번씩은 가져보는 꿈. 문제는 이런 꿈을 현실 가능한 일로 착각해 성인이 한참 지난 나이에도 어른이길 포기하는 경우.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어린애 취향도 바로 이런 '피터팬 신드롬' 이다.

최근들어 우리 주위에도 '어린애 취향' 을 즐기는 청소년.성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 한술 더 뜬 얄팍한 상혼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종산업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덩치는 부모보다 큰 어른이면서도 말투나 행동이 어린이 수준을 맴도는 성인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리에 털이 숭숭난 남자 대학생이 배낭에 앙증맞은 인형을 매달고 다니는가 하면 만화가 그려진 옷이나 소품을 즐겨 사용하는 청년들도 많다.

직장여성 가운데는 8천5백원 하는 작은 미니마우스를 핸드폰 안테나에 꽂아 들고 다니기도 한다.

"전자파를 막아주기도 한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지만 내심으로는 어린 시절 환상의 대상이었던 미니마우스의 앙증맞은 모습이 향수를 불러일으켜 샀다" 는 조경주씨 (32.회사원) 는 "주위에서는 유치하다고 핀잔을 하기도 하지만 내자신은 아주 만족스럽다" 고 말하기도. 압구정동에서 성인용 팬시전문점 '알버트 아저씨' 를 경영하고 있는 이창우씨는 "키디나 미키마우스등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휴대폰케이스나 안테나에 다는 인형, 라이터등이 인기품목" 이라고 설명했다.

20~30대 성인을 주된 대상으로 영화.만화의 주인공을 활용한 의류.잡화등을 판매하는 미국의 캐릭터업체 '워너브라더스' 도 지난달 국내에 첫 상륙했다.

아이들 놀이에 열중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최근 중.고생뿐 아니라 직장 여성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코디스티커' 는 그들이 어린시절 즐겨했던 종이인형을 스티커 형태로 바꾼 것.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인형에 알록달록한 옷들을 갈아입혀 보며 '인형놀이' 로 하루해를 보내던 어린시절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부산 K여고1학년 김석영양 (16) 은 "한번 코디스티커를 잡으면 몇시간씩 갖고 놀아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 라고 말했다.

복잡한 현실을 떠나 아무 근심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피터팬 신드롬' 은 TV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동화같은 드라마 '신데렐라' '아름다운 그녀' 등이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어린이 만화 '세일러문' 이 최근 종영되자 PC통신에는 '그만두면 안된다' 는 반대가 빗발쳤고 팬클럽과 토론방이 만들어져 '종영반대 서명운동' 까지 벌이고 있다.

통신 가입자의 연령이 최소한 중.고생은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린이 만화에 대한 반응으로는 의외. 무조건적인 보호와 사랑을 받았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심정이 대학 신입생이 되어서도 과거에 집착하는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대학생이니 다 키웠다' 며 어느정도 홀가분해 하는 부모의 태도가 갑자기 냉담해진 것처럼 느껴지고 장래계획등 모든 일을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어린 시절에 머물고 싶다' 는 욕구를 부르는 것. 부모의 경제력 덕분에 또는 좋은 성적 덕분에 '행세' 하며 중.고교 시절을 보내다가 대학에 들어가 비슷한 수준의 또래들 사이에서 '홀로서기' 를 해야만 하는 현실이 엄두가 나지 않아, 과거를 끝없이 미화하며 그 시절 인간관계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 황내향상담원은 "간혹 지방대학출신 대학원생 중에도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현실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는 태도가 되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며 "이럴 경우 가치판단의 기준이 한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조언하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데 상담초점을 맞춘다" 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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