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16번이나 승복약속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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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추석연휴의 문턱에서 한국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근대정치제도가 도입된 이래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대통령후보 경선의 패배자가 당을 뛰쳐나와 출마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92년 민자당 이종찬 (李鍾贊) 후보가 탈당하긴 했지만 그도 어떻든 경선막판에 경선을 거부했으므로 이인제 (李仁濟) 경기지사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이 독특하고 희한한 사건은 귀성객들의 추석상에 올라 시비의 격론을 낳을 것이다.

李지사는 13일 경선불복을 이렇게 변명 (그의 표현) 했다.

"약속을 지키려 했으나 새로운 정세가 조성됐고 많은 국민이 나를 불렀다" 는 것이다.

압축하면 "상황이 변했다" 는 상황론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지도부와 많은 의원들은 대야 (對野) 감정보다 훨씬 험악하고 격앙된 분노와 규탄을 퍼부었다.

13일 신문사에 걸려온 전화의 다수는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비판론이었다.

이런 반응과 감정의 물결 이전에 먼저 경선불복에 대한 논리적 시비가 규명돼야 할 것같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경선때 그가 선서한 승복약속은 무려 16번. 듣는 이는 당원이었지만 책임있는 여당경선이었으므로 그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경선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승복하겠다" 고 서약했다.

'전적으로' 란 표현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맹약 (盟約) 의 언어다.

위약 (違約) 으로도 상징되는 3金정치의 폐해에 새정치 주자라는 그가 또 하나의 예 (例) 를 보태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 자신은 95년 6월 경기지사후보 경선에서 자신에게 패한 임사빈 (任仕彬)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자 격하게 그를 비난했다.

그는 "서부극에서 악당들이 목숨걸고 싸울 때도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의 경선불복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도 불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는 당개혁안에서 총재.부총재.총무.지구당위원장의 경선을 주장했다.

소신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신당에 경선제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 여러차례의 '화려한 경선' 이 끝난후 당선자의 지지도가 변했다고 해서 낙선자들이 등을 돌리고 불복할 때 그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김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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