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 제약사 뒷거래 근절하자” 미 하버드 의대생들 자정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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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하버드 의대생인 매트 저든은 4년 전 첫 약리학 수업시간에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교수가 콜레스테롤 치료제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부작용은 없느냐”는 학생의 질문을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저든은 수업 후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이 교수가 콜레스테롤 치료제를 만드는 5개 사 등 10개 제약사로부터 돈을 받고 컨설팅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동료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그는 “교수의 강의가 제약사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든은 교수와 제약사의 부정한 연결 고리를 끊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하버드 의대생 2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자정 운동으로 확대됐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3일 보도했다. 학생들은 하버드 의대의 17개 부속 병원과 연구소·강의실·실험실에서 제약사의 돈을 받은 교수들이 제약사에 유리한 내용을 가르치는지를 감시해 공개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하버드 의대는 모든 교수와 강사가 수업시간에 기업으로부터 받은 지원 내용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다른 의대보다 낮은 현행 윤리 기준을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19인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의대생 대표 3명도 참여했다.

하버드 의대에는 교수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나 식사 대접, 공연 티켓, 여행 비용 등에 대해 별다른 제한이 없다. 교수는 받는 강연료나 컨설팅 수수료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일부 교수진에 대해서만 기업 연구 대가로 3만 달러 이상의 주식이나 연 2만 달러 이상의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규정만 두고 있다. 하버드 의대는 지난해 제약사로부터 기초의학 연구 명목으로 860만 달러(약 130억원), 의학 교육 지원 명목으로 300만 달러를 받았지만 어떤 교수가 얼마를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전미의대생협회(AMSA)가 최근 미국 의대들의 제약사 지원금 관리·감시 수준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하버드 의대는 가장 낮은 F 학점을 받았다. 하버드 의대와 제약사의 유착이 의심스럽다는 평가였다. 경쟁 대학인 펜실베이니아 의대는 A, 스탠퍼드·컬럼비아 의대는 B, 예일 의대는 C 학점을 받았다.

한편 병원과 제약사의 유착을 우려한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7월부터 의사가 기업으로부터 50달러 이상 선물을 받으면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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