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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1시간 넘게 지켜보던 김수환 추기경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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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명동성당에서 만난 구중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이 자신이 쓴 김수환 추기경의 평전을 품에 안고 김 추기경을 회상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선종 열흘 만에 김수환 추기경의 평전이 나왔다. 지은이는 40년 가까이 김 추기경을 알고 지냈던 구중서(73·수원대 명예교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이다.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책만드는집)에는 유교와 불교 등 타종교와 타종교인에 대한 김 추기경의 열린 마음이 유독 돋보인다.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구 원장을 만났다. 그는 “제가 가톨릭출판사 편집주간일 때, 김 추기경께서 출판사 발행인을 맡았다 ”고 말했다. 지척에서 만났던 김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온유하고, 예의도 알고, 의리도 있고,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웃 종교에도 열려 계셨다”고 답했다.

◆『논어』를 읊었던 김수환 추기경=2001년 4월이었다. 구 원장은 허겁지겁 혜화동 주교관을 찾았다. 도올 김용옥 교수와 김수환 추기경의 TV대담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김 추기경의 위상과 품위에 손상이 갈까봐 걱정이 돼서였다. 김 추기경은 “이미 약속이 됐다”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서가에서 찾아도 안 보인다. 『논어』를 한 권 구해달라”고 구 원장에게 부탁했다.

TV대담은 천주교 측의 우려와 달랐다. 구 원장은 “김 추기경은 공자가 말한 ‘하늘(天)’을 얘기했다. ‘유교의 천(天)이 푸른 창공 자체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우주의 본원적 주체로서 하느님을 의식한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TV대담에서 김 추기경은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울림을 드러냈다.

1986년 구중서 원장이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다=2000년 5월 23일, 김 추기경은 성균관대학 600주년 기념관에서 ‘심산상(心山賞·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유림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려 제정된 상)’을 받았다. 김 추기경은 수상소감에서 ‘유교와 제사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17세기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이땅에서 만났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제사 금지령은 달레(프랑스의 천주교 성직자)의 말대로 ‘조선 국민 모든 계층의 눈동자를 찌른 격’이었다”. 그리고 조선 정부가 ‘전통 유교의 파괴자’라며 천주교를 박해해 100년간 1만 명 이상이 순교하는 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돌아보면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보본추효(報本追孝)였다. 이를 인식한 천주교에선 1939년 조상 제사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구 원장은 “김 추기경의 친할아버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이로 인해 추기경의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석굴암에서 넋을 잃은 김 추기경=구 원장은 “김 추기경이 경주 석굴암에서 넋을 잃고 불상을 봤던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추기경은 1시간 넘게 우두커니 서서 석굴암 불상을 바라봤다고 한다. 이때 기록이 1976년 월간잡지『대화』에 실렸다. 당시 김 추기경은 “(석굴암 불상을 볼 때) 무엇인지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로마 바티칸에 가서 세계적인 미술품 성상들을 볼 때도 5분 이상 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며 “결국 내 안에 불교적인 피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이러한 요소를 거부할 수 없는 거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를 나누고, 거기에서 고유하고 불멸하는 가치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구 원장은 “그건 종교혼합주의와 다르다. 김 추기경은 유교와 불교의 가치를 다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교가 지니는 소명과 현실적 여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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