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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태학자 윌리엄스著 '진화의 미스터리' 자연도태설 허점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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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간의 눈은 왜 두 개뿐일까. 뒤통수에도 하나 있으면 훨씬 편리했을텐데. 또 안구 뒤쪽에는 왜 6개의 근육이 붙어있을까. 카메라 다리가 3개이듯 작은 근육 3개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텐데…. 미국 생태학자 조지 윌리엄스의 '진화의 미스터리' 는 이렇게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두산동아刊) .그렇다고 흥미위주의 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 현대 진화생물학계가 밝혀낸 연구성과를 정리한 묵중한 과학서다.

우선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한 뾰족한 답은 없다.

단지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그렇게 결정됐다.

창조주의 계획이나 특정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굳어졌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운 진화에 대한 상식을 뒤엎고 있다.

19세기 중엽 다윈이 '종의 기원' 에서 제시한 진화론의 허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셈. 다윈 이론의 골자는 '자연도태' .대부분의 생물은 환경에 가장 알맞은 기능을 구비하는 쪽으로 발전하며,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 혹은 종이 살아남는다고 설파했다.

반면 저자는 진화란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크고 작은 '우연' 이 훨씬 중요하고 직접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수많은 결함을 끌어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왔다고 강조한다.

그는 단적인 예로 여성의 출산을 든다.

굳이 좁은 골반 사이로 아이를 힘들게 낳아야 할 필연적 사유는 없었다는 것. 차라리 질 (膣) 의 출구가 아랫배로 났으면 출산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우스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만큼 인간 몸에는 구조적 잘못이 많으며 진화란 항상 '훌륭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남성들의 생식기관와 배설기관도 요도관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 '덜떨어진' 경우다.

그렇지만 저자는 진화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윈이 제안한대로 진화는 작은 변화가 축적된 점진적 변화라는 점에 수긍한다.

예컨대 성의 분화, 난자.정자및 남녀간의 외형 차이, 성비균형, 배우자 선택, 노화현상등을 진화론 시각에서 조목조목 짚고 있다.

임산부들의 입덧은 음식물 속의 유해한 독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적응과정이며, 부부들의 '외도' 는 진화적 차원에선 종족확산, 혹은 더 나은 '짝' 을 찾는 행동이라는 설명은 무척 흥미롭다.

문제는 이같은 진화가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는 점. 저자는 특히 인간의 몸은 석기시대 생활에 맞게 설계된 그대로 남아있으나 생활환경은 급격하게 달라져 온갖 현대병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크게 늘었으나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질환에 시달리게 됐다는 주장. 구체적으로 오늘날 인류의 기본적 욕구는 석기시대와 동일하나 설탕.지방.소금을 훨씬 쉽게 얻게된 결과 비만.당뇨.심장질환.암등의 성인병 발병률은 높아졌다.

저자는 나아가 진화의 도덕적.철학적 의미도 따진다.

진화란 본질적으로 때로는 효율적으로, 때로는 어리석게 진행된 만큼 현대인에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주문한다.

마치 어머니와 같이 고마운 존재로 의인화된 자연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 기독교적 신의 개념도 물론 설 자리가 없다.

생명의 탄생.죽음등을 철저하리만큼 물질의 진화 측면에서 논하려는 태도에선 일종의 섬뜩함도 느껴진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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