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승자 없는 ‘100일 휴전’… 여도 야도 웃음 사라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3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선 유독 두 사람의 표정만 밝았다. 협상 당사자인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다. 홍 원내대표의 “국회 혼란이 어제 모두 끝났다”며 “국회의원을 네 번 하면서 모든 갈등 법안이 (국회 절차대로) 상임위에 상정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만족감을 보였다. 임 의장도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한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가세했다.

미디어 관련법 등 쟁점 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의 점거와 몸싸움은 계속됐다. 3일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中)이 위원장 석을 점거하자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左) 등이 이 의원을 끌어내고 있다. [김형수 기자]


그러나 다수 의원은 끓는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상정했던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문방위원들은 허탈해했다.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100일간 논의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을 지도부가 받아들인 때문이다. 2일 의원총회에서 고 위원장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상임위에서 만들어도 야당이 떼를 쓰고 의장이 버티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정병국 의원도 “그동안 숱하게 학회와 공청회를 해 왔는데 100일은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내홍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당내 초·재선 그룹 ‘국민모임’ 소속 강창일 의원은 3일 원혜영 원내대표에게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원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의사를 묻겠다”고 답했다. 김근태·정동영계 의원그룹인 ‘민주연대’의 이종걸 의원도 방송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에 100%를 내준 협상”이라며 “지도부가 거취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언론악법은 국민적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상정·논의·처리되어선 안 된다”며 “시한부 표결 처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도부는 진화에 부심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중앙위원회에서 “국민들은 제1야당이 지킬 것은 지켜 주길 기대한다는 점 때문에 내린 결단”이라고 방어했다. 또 오후엔 당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국민 입장에서 타협을 결단했으며 사회적 논의기구는 끝이 아니라 (투쟁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목소리를 내지 않던 온건파도 정 대표를 감싸고 나섰다. 2일 의원총회에서 김효석 의원은 “직권상정으로 미디어법 독소조항이 모두 통과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도부가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들끓었다. 미디어법안 처리를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2년차 ‘개혁 드라이브’의 시험무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중재안을 낸 김형오 국회의장과 합의를 자축하는 여당 지도부를 보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 미디어정책 관계자는 “100일간 논의를 한다고 평행선을 달리던 여야의 의견차이가 과연 좁혀지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올 상반기를 넘기면 지상파 독과점 구조 해소를 위한 민영미디어렙 도입 등 미디어산업 선진화의 기회가 완전히 물 건너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공보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도 “100일 동안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느냐”고 말했다. 

임장혁·선승혜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