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오해에 대한 '선택' 이문열의 변…서두의 실수는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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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4월 장편소설 '선택' (민음사刊) 을 펴내고 나서 작가 이문열씨는 줄곧 시달리고 있다.

이 작품이 여성.여성운동을 폄하.비난 했다며 여성 논객들이 신문.잡지등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 침묵으로만 일관해오던 이씨가 "소설이니 소설로 읽어주고 이제 그만 논쟁을 그치자" 며 글을 보내왔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하고 싶은 것만 이해한다 - 이번에 졸작 '선택' 출간을 계기로 제기된 여류제위 (諸位) 의 반론을 들으면서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된 말이다.

배움 많고 사려 깊은 여성론자로부터 그 천둥벌거숭이 전위 (前衛)에 이르기 까지 말의 세련됨과 논리의 치밀성에 차이는 있어도 오해에 가까운 기본인식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글로 나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 맞서본 적이 없다.

이번 '선택' 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담이나 강연에서는 더러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나를 변호한 적이 있지만 정색을 한 글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서지문 (徐芝文) 교수의 글에서도 그같은 오해 또는 자의적인 해석이 있음을 보고 답답함과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이 글을 쓴다.

'선택' 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내가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주제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나는 제목처럼 여성의 한 '선택' 을 제시했지, 보수적 가치관을 유일한 가치로 '강요'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책 어디에도 여성은 모름지기 주인공인 정부인 (貞夫人) 장씨 (張氏) 처럼 살아야한다고 주장한 구절은 없다.

오히려 요즘의 논의에서 여성의 가정적인 성취가 너무도 경시되는 것이 안타까워 그 길도 선택할만한 가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논의자들은 어김없이 '강요' 로만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반론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정녕 가정적인 성취는 하나의 가치로 제시될 수조차 없는 것인가.

이제는 여성의 선택에서 영영 제외되어야 하는 가치인가.

두번째로 나를 답답하게 한 것은 부분 부정과 총체적 부인의 혼동이다.

틀림없이 내 글에는 여성운동이나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제나 수식구 혹은 수식절로 제한되어 있다.

'천박하게 이해되고 저속하게 추구되는' 이라던가 '필요가 아니라 그릇된 전도열 (傳道熱)에 감염된' 따위가 그러하다.

그런데 반론을 편 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여성운동 전반 혹은 여성의 사회참여 전반에 대해 비판하고 부정했다고 화를 내고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내가 아무리 얼치기 보수주의자일지라도 남성들의 부당한 기득권이 더는 옹호될 수 없다는 것과 남성들의 노동만으로 이 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세번째는 비난 가능성의 지나친 확대이다.

비난 가능성은 '해야할 일' 을 하지 않을 때 발생하지만 내 '선택' 에 대해서는 '했으면 더 좋았을 일' 을 하지않은 것까지 포함하는 듯하다.

'선택' 이 여성들의 실수나 약점과 더불어 남성들의 부도덕이나 무절제함도 드러내 보이고 있다면 틀림없이 논리적으로는 더 균형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작품의 이야기가 된다.

'선택' 은 한 여인의 이야기이고 그 단일한 효과를 위해서는 남성들의 악덕을 장황하게 그려넣을 공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남성들의 자기반성이 빠져있다고 이 작품이나 작가를 비난하는 것은 비난 가능성을 지나치게 확대한 처사다.

'인형의 집' 에서 여주인공 노라의 약점이나 무능을 길게 늘어놓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남성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이제와서 냉정히 돌아보면 내 실수도 없지는 않다.

나는 이 작품의 서두에서 동료 후배들의 소설 제목을 이렇다할 변경없이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했다.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그 제목들이 가진 비유 혹은 상징의 절묘한 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저지른 실례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했다면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이 몇몇 대중적인 여류명사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이 천박하게 이해되고 저속하게 추구되는 여성론이건, 몇세기에 걸친 비장한 여성운동의 부정적인 잉여가치이건 한창 제멋에 겨워 신나게 돌아치는 그들에게는 '선택' 에서의 많은 논의들이 마치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욕설처럼 들렸을 것이다.

뭣좀 된다 싶은데 갑자기 덮어씌워진 한바가지 얼음물 같았는지도 모른다.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윤리적 침전물들을 휘저어 놓아 어떤 위기감까지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이문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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