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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정부·공기업 비효율운영 국민에 부담전가 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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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재정파탄 위기에 몰렸던 영국과 뉴질랜드 정부는 과거 십수년간 스스로 군살빼기에 나서 국민부담 경감과 서비스 개선에 큰 성과를 거뒀다.

미국도 클린턴 행정부 출범후 '일은 더 잘하고 돈은 덜 드는 정부의 창조' 를 기치로 정부지출과 인력감축, 서비스 향상에 매진해 왔다.

민생은 뒷전이고 기업이익만 돌본다고 비판받던 일본정부까지 이제 민생 우선의 행정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부는 국민부담과 불편을 가중시킬 궁리나 하고 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대량실업의 위기마저 감도는 이때 선진국보다 수도요금이 낮다며 값을 올리더니 의보수가와 우편요금.전화요금을 크게 올렸다.

앞으로 택시를 모두 고급화하고 경유와 가정용 LNG값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올리겠단다.

한술 더 떠 여당은 정부의 긴축재정 방침에 반대, 내년도 예산의 대폭 증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와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책임을 국민에게 모두 떠넘긴 것이다.

물.에너지.환경.교통문제의 근원이 낮은 가격에 있다며 문제해결을 빌미로 정부세입 증대나 꾀하는 것이다.

국가경제와 국민부담은 어떻든 선거에서의 표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정부와 공기업도 필요한만큼 세금과 요금을 인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국민의 부담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노리기에 앞서 공공조직과 예산에 붙어있는 군살부터 제거할 일이다.

영국과 뉴질랜드 정부가 달리 스스로 군살빼기에 나선 것이 아니다.

더 쥐어짜봐야 나오는 것 없이 정권만 위태롭게 생겼으니 자구책으로 조직.인력.재정의 감축과 정부기관의 기업화.민영화로 비용도 절감하고 서비스도 향상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개혁도 동기는 같다.

우리 정부도 자구책을 펼 때가 된 것이다.

선진국 정부는 돈을 많이 쓰는 대신 서비스 수준이라도 높으니 그나마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 난방비가 모자라 떨고 지내는 사람이 없도록 소득수준에 맞춰 난방 보조금을 주고 골수이식 수술을 요하는 사람이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책임지다 보니 정부지출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노인들이 돈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가고 자식들에게 전화도 못 거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노인의 택시비와 시외통화료까지 내주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이다.

서비스 수준을 보면 우리 국민이 지불하는 가격 (세금) 은 지금도 높다.

그런데도 가격만은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겠다니 체육관 선거가 아닌 터에 정부의 배짱도 참 대단하다.

하상묵 한국행정연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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