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씨'추석前 사면'놓고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대표 심야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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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을 감싼 난기류를 조기 진정시키려는 여권 핵심부의 노력이 2일 밤 전개됐다.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대표가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전대통령의 추석전 사면건의를 할 것이라는 李대표측 예고가 난기류의 시발이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 .때문에 청와대는 李대표측 처사를 '도전' 을 넘어 '무시' 로 받아들였고 사면건의를 거부했다.

결국 이날 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과 李대표간의 긴급회동이 이뤄졌다.

李대표가 이날 회동을 강하게 요청했다.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이다.

심야긴급회동으로 양측간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악화되는 사태만큼은 막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난기류의 근본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처하느냐가 향후 정국의 방향을 가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김영삼대통령은 2일밤 신한국당 이회창대표의 全.盧씨 사면건의 문제로 불거진 양자간 이상기류를 해소하기 위한 李대표의 긴급요청을 받아들여 만났다.

양자는 50여분간 회동에서 상호간의 입장을 설명, "사면문제를 더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이 문제의 재론으로 청와대와 李대표측이 심각한 갈등양상으로 비쳐지는 상황은 막아야겠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단 이 문제로 인한 마찰은 봉합된 셈이다.

李대표는 金대통령에게 이 사단 (事端) 의 경위를 소상하게 설명, 대통령 고유권한인 사면권에 간여할 뜻이 아니었음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유감표명 형식이었던 듯하다.

金대통령은 全.盧씨 사면문제는 역사바로세우기와 직결된 사항이라는 점을 들어 가까운 시일내 사면단행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다만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한 만큼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단행할 뜻을 전하고 아울러 李대표가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사면을 건의한 것을 이해한다고 밝혀 李대표를 어느 정도 배려했다.

이날 심야 긴급회동은 전례없이 청와대 본관이 아닌 관저에서 이뤄졌다.

金대통령이 일과후 습관을 깬 것은 李대표의 면담 요청이 워낙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金대통령도 이날 아침 李대표가 제기한 '추석전 사면' 을 묵살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아침 金대통령은 전직대통령의 사면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李대표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다는듯 단호하게 '불가' (不可) 통보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金대통령의 심기는 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 이라고 말했다.

사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왜 넘보느냐는 것이다.

金대통령이 문종수 (文鐘洙) 민정수석을 통해 밝힌 입장을 살펴보면 李대표가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서 '대선 전략' 으로 써먹으려 한다고 질책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줬다.

한 관계자는 "李대표가 사면을 통한 대통합으로 金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데 대해 金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워 이를 정략적 자세로 평가절하해 '역 (逆) 차별화' 를 해버렸다" 고 해석한다.

이날의 심야 긴급회동이 청와대와 李대표간의 감정 괴리를 포함한 갈등과 李대표의 정치적 흠집을 덮을지는 미지수다.

사안의 접근과 처리에서 李대표쪽의 '아마추어' 적 자세와 치밀함 부족이 너무나 완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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