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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일본 교과서 왜곡검정 32년간 법정투쟁 이에나가 사부로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왜곡검정에 맞서 32년간 법정 투쟁을 벌인 일본의 '양심' 이에나가 사부로 (家永三郎.83) 전도쿄교육대 (현 쓰쿠바대) 교수는 30일 본지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사실상의 승소후에 남은 아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특히 동학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공주전투' 에 대한 기술을 수정하라는 문부성 검정이 최종심에서도 위법으로 판정받지 못한데 대해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1백63㎝.38㎏의 노역사학자가 병마에 시달려가며 얻어낸 일본 최초의 '왜곡검정은 위법' 판결은 어떤 드라마 못지 않게 감동적이다.

판결내용이 보도된 30일 본지 독자들로부터는 "감사의 편지나 선물을 보내고 싶으니 그분의 주소를 알려달라" 는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조선인민의 반일 (反日) 저항 부분을 삭제하라는 문부성 검정은 결국 적법판결이 났는데. "1894년 조선에서 벌어진 동학군과 일본군의 전투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난 내 원고가 맞다고 확신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 지금까지 소송 과정에서 우익등 반대세력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를 이겨낸 정신적인 버팀목은 무엇인가.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후세에 바른 역사를 전해야 한다' 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 3차 소송의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감은.

"내가 이의를 제기한 8개 사항중 4개 사항에서 위헌판결을 받아냈으므로 보람과 아쉬움이 반반이다.

내가 소송을 낸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권력이 역사기술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신념이었다."

- 개인적으로 일본의 과거 가해책임에 대한 생각은. "전쟁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를 막는데 나서지 못한 부작위 (不作爲) 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 한국을 방문한 적은. 또 지인은 있는가.

"일본땅을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다.

지명관 (池明官.한림대교수) 선생은 개인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이번 3차 소송때 증인으로 나선 분이기 때문에 알고 있다."

-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전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

"일일이 답장은 못하지만 고맙게 받겠다.

몇년전 한국의 한 교사로부터 자비출판이라도 좋으니 내 저서 '신일본사' 를 번역출판하고 싶다는 편지가 온 적이 있다.

이런 분들의 성의가 큰 힘이 됐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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