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이창호>
최철한 9단은 좋은 후배다. 별명과 달리 순한 성격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응씨배와 최철한의 질긴 인연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승부란 길게 보면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다. 나는 수없는 우승을 했고 수많은 박수를 받았으나 불과 10년도 안 된 세월 속에서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최철한에게 결승에서 자주 진 이유를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굳이 답변한다면 바로 그 무렵부터 내 계산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 무렵엔 이세돌 9단보다 최철한 9단이 더 힘들었고 최철한에게 자주 지면서 패배에 대해서 배우게 됐다.
나는 10여 년 세계 정상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대회 무관이다. 세월의 힘을 느끼면서도 그 힘에 도전하며 승부를 즐기고 싶다. 이번 응씨배는 시간도 충분하다.
<최철한 9단>최철한>
이창호 9단과의 결승전에선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5년 전 처음 만난 국수전 도전기에서 3대2로 승리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그러나 국민적 영웅인 이창호 사범을 이긴다는 게 좋은 결과만 낳은 건 아니다. 특히 5회 응씨배가 내 인생에선 지워버리고 싶은 뼈아픈 기억이다. 당시 8강전에서 이창호 9단을, 준결승에선 중국의 펑취안 7단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 중국의 창하오 9단과 대결했다.
이때까지 나는 가파른 상승세였고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2004년 12월에 시작되어 2005년 3월에 끝난 응씨배 결승에서 나는 창하오 9단에게 3대1로 패배했다. 가슴이 아팠다. 더욱 괴로웠던 것은 “이창호 9단만 떨어뜨리고 중국에 우승컵을 헌납했다”는 네티즌의 비난이었다.
나는 ‘독사’라는 별명을 받았지만 실은 하나도 독하지 못하다. 그때의 상처로 인해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고 그 결과 지난 3년간 결승에 올라본 적이 없다. 한 많은 응씨배다. 꼭 우승해서 내 마음의 빚을 청산하고 싶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