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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 오른 대전시향 "우리 音에 우리도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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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창단 20주년을 맞아 시애틀.뉴욕 등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펼친 대전시향(下)과 지휘자 함신익.

음악인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카네기홀 가는 길은 그 명성에 걸맞게 멀고도 험난했다. 무더위와 싸우며 펼친 강행군인데다 화물칸에 넣어도 더블베이스가 파손되지 않는 800만원짜리 항공 운반용 케이스가 없어 더블베이스 다섯 대를 현지에 도착하는 대로 네번에 걸쳐 빌리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만큼 수확도 컸다.

지난 14일 뉴욕 카네기홀(2804석)에서 1904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시립교향악단(음악감독 함신익)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으로 뉴욕 시민들과 한국 교민을 사로잡았다.

대전시향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지난 7일부터 9박10일간 미국 4개 도시를 도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피날레 무대였다. 거듭되는 커튼콜 끝에 대전시향은 이번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토머스 더피에게 특별히 위촉한 '고향의 꿈'이란 곡을 앙코르로 들려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미국인들에게 '제2의 국가'로 불리는 'America, the Beautiful'과 한국 민요 '아리랑'을 현란한 관현악법으로 엮어낸 곡이다.

이번 순회공연의 부제는 '낭만 여행'이었지만 일정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애틀로 가는 항공편이 결항돼 단원 80명 중 30명이 꼼짝없이 5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하루 걸러 이동과 연주를 반복하는 강행군으로 지휘자 함신익씨가 10일 볼티모어 조셉 메이어호프 심포니홀 공연이 끝난 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커튼콜만 생략했을 뿐 프로그램은 차질 없이 연주해냈다.

시애틀 베나로야 홀(8일), 필라델피아 킴멜 센터(12일) 등 최근 새로 개관한 콘서트홀 공연을 마치고는 지휘자.단원들 모두 부러움과 아쉬움을 토해냈다. "한국에는 왜 이런 훌륭한 심포니 전용홀이 없을까"라는 것이었다.

뉴욕 카네기홀 공연 참석차 마지막 일정에 합류한 염홍철 대전시장은 "대전시향이 이렇게 훌륭한 소리를 낼 줄 몰랐다"며 "단원 처우를 국내 최고 수준으로 올리는 등 시향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함신익씨는 "지난해 개관한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은 다목적 홀이어서 음향에 문제가 많다"며 "대전시향도 자체 심포니 전용홀에서 연주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공연에서 무대 리허설 때마다 오히려 관악기에 음량을 줄여달라고 주문해야 할 정도로 잔향시간은 물론 명료도.음압(音壓) 등이 뛰어나 공연장 자체의 음향 전달효과가 컸다. 무대에서도 단원들이 자신의 연주는 물론 다른 연주자의 소리도 잘 들을 수 있어 대전 공연에서보다 앙상블도 뛰어났다.

옥에 티도 있었다. 브루흐 협주곡에서 순회공연의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고음(高音)과 빠른 악구에서 가끔 음정 불안을 드러냈고, 오케스트라는 일관성 없는 템포 설정으로 흐르는 맛을 반감시켰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선 리듬 감각이 아쉬웠고, 관악기와 현악기군의 밸런스가 부족했다. 또 조상욱의 '옛날 옛적에'는 외국 무대에 내놓기엔 다소 미흡해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취임 3년 만에 외국인 4명을 포함해 젊은 단원을 보강해 대전시향을 국내 정상급으로 발돋움시킨 함신익씨의 기량이 마음껏 발휘된, 의미있는 순회공연이었다.

미국 시애틀.볼티모어.필라델피아.뉴욕=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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