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 봄볕같은 '사랑의 손길' 20년째 '이발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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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중앙20일 오전 LA한인타운 웨스턴과 4가의 웨스턴 미용실(원장 제니 홍).

머리가 덥수룩한 흑인 라티노 5명이 들어섰다. 행색이 초라한 노숙자들로 한눈에 봐도 손님은 아니었다. 눈살을 찌푸릴 만도 한데 제니 홍 원장과 직원들이 반갑게 이들을 맞았고 이내 말쑥한 모습으로 바꿔놨다.

20일 오전 LA한인타운 웨스턴과 4가에 있는 ‘웨스턴 미용실(원장 제니 홍·아래 사진)의 직원들이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고 있다.

이들 노숙자를 이곳으로 이끈 사람은 노숙자의 대모로 불리는 글로리아 김 선교사.

"할리우드 지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데 10여년 간 함께 지냈던 친구가 지난 12월 30일 세상을 떠났어요. 오늘 그 친구의 장례식이 예정돼 있어 홍 원장께 미리 부탁했어요. 단정한 모습으로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을 가지라구요."

김 선교사는 이곳에 오기 전 샤워를 시키고 새 옷도 입혔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장례식은 연기됐고 이들은 친구가 묻힐 장지라도 미리 가보기로 하고 김 선교사를 따라 나선 길이었다.

이 장례식도 우여곡절끝에 준비됐다. 유가족과 연락이 닿지않아 지난 2개월 동안 싸늘한 병원 영안실에 시신이 안치된 것을 김 선교사가 법원으로부터 장례 위임을 받아 비로소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된 것.

김 선교사의 '노숙자 사랑'은 오래 전 홍 원장 가슴으로 전파됐다. 홍 원장의 노숙자 무료 이발 봉사는 이미 20년에 이른다.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김 선교사의 모습을 보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기술로 소외받는 사람을 돕고 있을 뿐입니다."

홍 원장 미용실을 지난 20년간 드나든 노숙자들은 줄잡아 400명이 넘는다. 아무리 바쁜 시간일지라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김 선교사의 귀띔이다.

"뭔가 베풀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지만 이 사회에서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주는 것 같아 기쁩니다"

33년 동안 지켜 온 천직으로 노숙자를 감싸는 홍 원장의 가슴이 봄볕처럼 따뜻했다.

[미주중앙 : 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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