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미대사관도 고개저은 비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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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대선싸움에 드디어 미국까지 끼어드는 볼썽 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주한미대사관 공보관은 20일 "한국전에서 전쟁포로 처형목적으로 미군함이 사용된 적이 없다" 고 공식 발표했다.

색깔논쟁 와중에서 신한국당이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가 총살당할 뻔했다" 고 주장한 것을 부인한 것이다.

신한국당은 "공산당원으로 체포된 金총재는 미군함상에서 사살되기 직전 동향 (同鄕)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며 金총재를 여러 차례 공격했다.

신한국당은 이 근거로 언론보도를 제시했다.

일본 월간지 중앙공론 (中央公論) 등 외국언론을 원용했다.

그러니 미당국이 부인했어도 언론을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심리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몰양심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유리하다 싶으면 사실이고, 불리하다 싶으면 거짓이라는 편한 사고다.

맞고 안맞고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공신력을 따질 생각도 없고 자체검증도 생략된다.

그러다 급기야 국제망신까지 자초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야가 다르지 않다.

한건주의 심리는 여야의 이전투구 (泥田鬪狗) 식 성명전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일반사람끼리라도 그런 말을 했으면 주먹다짐이 벌어질 원색적이고 저속한 표현을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입에 담는다.

기사로 옮기기도 민망할 정도다.

공당 (公黨) 의 점잖은 의사표현방식인 '성명' 이나 '논평' 속에는 거짓말.빨갱이.프락치.파렴치등 '밑바닥' 단어들이 수북하다.

심지어는 '기획입북' 이라는, 국가공권력을 깡그리 부인하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가 저런데 나라고 어쩔 수 있느냐" 고 정당성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내가 맡은 역할이 그런 것" 이라고 강변한다.

실제로 악역을 담당한 대변인단의 주변에서는 "상대가 도발하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니 선거의 순기능은 아예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갈등 해소나 사회통합기능을 바랐다가는 순진하다는 핀잔만 듣게 됐다.

정책이나 노선, 후보의 자질검증도 공염불이고 민생과도 무관한 선거가 되게 됐다.

정권잡기가 그만큼 절박한지 몰라도 여야는 상대당 공격도 결국은 국민 들으라고 하는 말임을 자각해야 한다.

저질비방 경쟁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발상에서 나온, 국민 모독에 다름 아닌 것이다.

김교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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