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아기 울음, 그 후 4년…은총이 재롱에 온 동네 웃음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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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마산면 석동마을. 읍내에서 버스로 20분 가야 하고 버스에서 내려 2㎞를 걸어야 닿는다. 진입 도로가 좁아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외진 곳이다. 지난 18일 석동마을에는 은총이(4)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바디 노바디 버 츄.”

은총이가 태어난 뒤 은총이네 거실은 동네 노인들이 들르는 사랑방이 됐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은총이가 재롱을 부리자 부모 김원철·이경자씨(왼쪽 두 사람), 언니 혜민이(오른쪽에서 둘째), 동네 할머니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2005년 은총이의 출생으로 충남 서천군 석동마을엔 18년 만에 처음으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서천=프리랜서 김성태]


은총이는 분홍색 한복을 차려입고 검지를 앞으로 내밀고 춤을 췄다. 무대는 은총이 집 거실, 관객은 마을 어르신 3명과 은총이 부모, 언니 혜민이(11)다.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거린다. 은총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구원순(75) 할머니가 “갖은 것 다하는구먼. 이만큼 크느라 욕봤다”며 은총이를 끌어안는다. 방으로 들어간 은총이가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길을 건널 때는 빨간불은 안 돼요. 초록불이 돼야죠”라며 얼굴에 손을 모아 흔들어댔다. 은총이는 계속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 노래와 춤을 뽐낸다.

석동마을에 은총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2005년 1월 25일. 18년 만의 울음소리였다. 전입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신생아 울음소리는 고사하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하나둘씩 도회지로 떠나면서 55세의 이종보씨가 가장 젊은 사람이 됐다. 환갑 안 넘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런 석동마을에 은총이가 찾아온 것이다. 은총이라는 이름은 18년 만에 태어난 ‘마을의 축복’이라며 교회 목사님이 지었다. 마을의 축복이 시작됐다. 이웃 주민 백환기(62)씨가 먼저 나섰다. 백씨 부부는 4년 전 은총이가 태어날 때 엄마 이경자(41)씨의 산후조리를 도맡고 나섰다. 장작으로 군불을 때 지글지글하게 온돌방을 데웠다. 미역국을 끓였고 대문에 금줄을 내걸었다. 외부 손님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나소열 서천군수가 기저귀·옷을 들고 와서 은총이의 탄생을 축하했다. 면사무소에서도 다녀갔다. 은총이 집은 마을 사랑방이 됐다.

장숙경(77) 할머니는 “은총이 재롱에 마을 분위기가 얼마나 밝아졌는지 몰라”라며 웃었다. 은총이 아버지 김원철(41)씨는 “은총이 보러 온 동네 어르신들의 신발이 현관에 가득할 때가 많다”며 “애를 봐 주시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도 끊이지 않았다. 은총이 부모는 은총이가 바깥에서 놀 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동네 주민들이 논두렁 같은 위험한 곳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동네 주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김씨 부부는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읍내 식당에서 은총이 돌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은총이 옷을 많이 선물했다.

◆비상 걸린 출산율=은총이가 태어난 2005년 합계 출산율(여자가 평생 낳은 아이 수)은 사상 최저인 1.08명으로 떨어졌다. 지자체가 아동수당 등을 지급하며 출산을 독려해도 소용없었다. 쌍춘년·황금돼지해 등의 호재가 이어지며 2006년 1.13, 2007년 1.26명으로 반등하는가 싶더니 지난해 1.2명 선으로 다시 떨어진 듯하다(보건사회연구원 추정치). 올해는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아기 울음소리를 더 듣기 힘들 전망이다.

서천=강기헌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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