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메신저·e-메일에 위치정보까지 검색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모든 정보통신 기기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산다면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숨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세상이 돼버렸다. 휴대전화는 위치와 통화 정보를 남기고, 교통카드는 버스나 전철을 탄 곳과 내린 곳, 시간을 남긴다. 신용카드로 밥값을 해결했다면 카드사 직원에게 실시간으로 자신의 식생활을 보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분이 아니라 초 단위로 행동이 기록된다. 휴대전화를 끄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현금을 내고 물건을 산다 해도 안 된다. 거리 곳곳에 지켜보는 제3의 눈이 있다. CCTV다. 그림만 기록될 뿐이지만 누군가가 추적에 나선다면 행적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을 24시간 지켜보는 첨단 정보사회의 현실을 탐사했다.

25년 전에 뭘 샀는지도 기록 남아
서울 광화문 인근 국민은행 빌딩 7층. 천장 가까이 솟아 있는 칸막이 너머로 핸즈프리 전화기를 착용한 8명의 여직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팀원 중 한 명인 오세정 주임이 모니터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를 마우스로 클릭하자 전화가 자동으로 연결됐다. “고객님, 국민은행입니다. 지난 4년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카드를 방금 사용하셔서 본인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명동 화장품점에서 15시44분29초에 3만5000원을 결제하신 것으로 나오는데, 직접 사용하신 게 맞습니까.”

이들 8명의 직원이 앉아 있는 있는 곳은 카드업무지원부 FDS(Fraud Detection System)팀이다. 총 16명의 직원이 하루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면서 75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은행 카드 고객의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조정희 팀장은 “국민은행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고객의 카드 사용 명세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며 “고객별로 소비 패턴까지 분석해 평소 습관과 다르게 카드를 쓰는 등 이상 징후가 발견될 때는 바로 전화를 하는 방법으로 고객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230만 건의 카드 승인 중 1~2건이 불법 사용으로 파악된다”며 “최근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터키에서 이런 사례가 많이 잡힌다”고 덧붙였다.
 
당신이 간 곳은 모두 안다

경부고속도로가 시작하는 궁내동 서울톨게이트. 차로 가운데로 파란 선이 그어진 ‘하이패스 차로’로 승용차 한 대가 매끄럽게 지나간다. 승용차 내에 달려 있는 단말기에서 “삑~” 소리가 나면서 거의 동시에 바깥 톨게이트 LED 화면에 ‘잔액 2만5000원’ 표시가 나타난다. 바로 옆 일반 톨게이트에서 요금 티켓을 뽑느라 길게 줄 지어 서 있는 차들과 대조적이다.

2000년 도입된 하이패스 시스템은 고속도로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편리를 누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이패스를 이용하면 차량의 소유주와 진·출입 톨게이트 위치, 통과 시간·요금 정보가 고스란히 한국도로공사 컴퓨터 서버로 옮겨진다. DB 보존 기간은 5년. 차량 운전자 본인은 잊어버려도 도로공사는 차량 운전자가 5년 전 ‘여름’ 한때 한 일을 알고 있는 셈이다.

하이패스와 별도로 카메라도 작동한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의 번호가 포함된 앞면이 디지털 사진으로 남는다. 이 사진은 경찰의 별도 요청이 없는 한 열흘간 저장된다. 도로영업처 김용일 차장은 “통행료를 안 내고 도망가는 차량을 잡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해 뒀다”면서도 “수시로 경찰이 찾아와 범죄 수사에 필요하다며 자료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걷는 것까지 감시하는 제3의 눈
서울 강남구 역삼동 CCTV 관제센터. 한쪽 벽면에 가로 10m, 세로 3m의 초대형 모니터가 붙어 있다. 모니터는 바둑판 무늬처럼 조그만 창 수백 개로 갈라져 있다. 이곳에서는 강남구 내에 설치된 방범용 CCTV 412대가 보내주는 영상을 모두 모니터할 수 있다. 다음달부터는 110대가 추가돼 522대가 운영될 예정이다.

강남구청이 126억원의 예산을 댄 이곳은 강남·수서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 8명이 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대형 모니터 한가운데는 CCTV 지리정보시스템(GIS) 정보가 연결된 지도가 자리 잡고 있다. 특정 지역에 범죄가 발생해 범인이 도망갈 경우 지도와 CCTV망을 이용해 범인을 계속 추적할 수 있다. 요원 한 명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조작하니 조그만 화면이 크게 확대된다. 키보드를 이용해 작동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CCTV의 방향을 틀 수도 있고, 확대도 가능하다. 건널목을 지나는 여학생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강남구청 자치행정과 최민행 팀장은 “41만 화소에 30배 줌 기능이 있어 100m 밖의 물체도 식별할 수 있고 360도 회전도 가능하다”며 “강남 거리에서 CCTV를 피해 나쁜 짓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CCTV가 찍은 영상은 30일 동안 저장된다. 혹 있을지 모를 경찰의 범죄 수사에 쓰이기 위해서다.

강남구에는 방범용 CCTV 외에도 147대의 주차단속용 CCTV도 설치돼 있다. 원격 단속을 위해 모든 CCTV 옆에 스피커까지 달았다. 구청 내 교통종합상황실에 앉아서 강남 거리 곳곳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주차단속용 CCTV 영상 역시 보존 기간은 30일이다. CCTV는 없는 곳이 없다. 집을 나서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출입문에. 지하상가의 천장에, 지하철역에, 회사에 나오면 역시 또 곳곳에…. 이재호 주임은 “공식적으로 집계가 불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CCTV는 200만 대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내역 보관기간 6개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태평1동주민센터 50m 부근’.
20일 오전 11시 서울 잠실동의 한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모씨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이씨가 확인 버튼을 누르자 조그만 화면에 지도가 펼쳐지고 가운데 붉은 점이 표시된다. 문자메시지와 지도의 붉은 점은 올해 80이 넘은 이씨의 노모가 현재 있는 위치다. 문자메시지는 한 시간마다 이씨의 휴대전화로 들어왔다. 이씨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아 항상 걱정이었다”며 “휴대전화 가족 위치추적 서비스에 가입했더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개인정보의 ‘집합체’나 마찬가지다. 전화를 가진 사람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특정 서비스에 가입한 상대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모두 이동통신사의 컴퓨터 서버에 남는다. 통화내역과 위치정보 둘 다 저장되는 기간은 6개월이다.

한 이동통신회사 관계자는 “위치정보가 지금은 기지국 기반이라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올 하반기부터 새로 출시되는 휴대전화에는 GPS 기능이 탑재되기 때문에 정확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내에서도 누군가 보고 있어
회사는 거리보다 더 치밀하다. 설치된 각종 시설의 목적 자체가 직원 감시용이다. 출입증에는 RFID칩이 들어 있다. 누가 언제 어느 문을 이용해 회사로 들어갔고 나왔는지에 대한 정보가 손금 보듯 담겨 있다. 출입문과 복도·엘리베이터 등 곳곳에 달린 CCTV는 출입증 기록과 합쳐지면 위력이 배가된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그때부터는 아예 ‘날 철저히 봐 주세요’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직원 e-메일과 사내 메신저 감시는 정보시스템이 갖춰진 회사라면 대부분 다 가능하다. 특정 직원이 무슨 문서를 봤는지, 프린팅은 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고스란히 기록된다. 직원 컴퓨터에 감시 전용 소프트웨어를 깔고 직원의 컴퓨터 이용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감시하는 회사도 많다.

한 대기업 직원은 “회사가 직원의 메신저와 e-메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해 오너이름이나 '퇴직' 등 특정 단어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분류·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정보보안은 물론 직원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