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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카고와 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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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이 통계를 다룰 줄 몰랐다면 과학사는 크게 바뀌었을 게다. 그는 유전에 대한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고자 무려 15년 동안 완두콩 교배실험에 매달렸다. 방대한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이론의 근거로 삼았다. 과학계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당시 생물학자들이 수학에 어두웠던 탓이다. 그의 법칙은 1900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았다. 후대 학자들이 알아챈 건 그뿐이 아니었다. 영국의 동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은 20세기 초, 멘델의 실험에 조작이 있었음을 밝혔다. 멘델은 자기 이론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실험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통계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그럼에도 전체 이론이 흔들리지 않은 건 그 조작이 수치를 보다 선명하게 하는 선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학술 사기를 19세기 영국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요리하기(Cooking)’라고 표현했다. 가설에 들어맞지 않는 값을 아예 빼버려 결과를 ‘맛있게’ 꾸민다는 뜻이다. 배비지가 더 크게 문제 삼은 건 ‘다듬기(Trimming)’였다. 애초 기대한 측정값이 나올 때까지 결과를 계속 조작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사회통계의 영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대개 실무자의 사심이 개입한 경우다.

영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사우스웰의『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에는 2000년대 초 런던 노숙자 수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가 나온다. 실태 조사일을 미리 안 담당부서가 질책을 피하려 노숙자들을 그날만 수용시설에 밀어 넣은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이었던 케빈 필립스는 지난해 “닉슨이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통계에서 빼 물가지수를 낮췄다”고 폭로했다. 미국 경제학자 스티븐 래빗의 책 『괴짜경제학』에는 1993~2000년 시카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대규모 성적 조작에 나선 사연이 나온다. 시당국이 학생 성적이 나쁘면 승진·연봉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때문이었다. 래빗은 “인센티브에 따른 부정은 기본적 경제행위”라고 말했다. 그만큼 막기 힘들다는 뜻이다.

일제고사 성적 조작 의혹이 일파만파다. 전북 임실초등학교처럼 낮은 점수를 누락한 곳이 있는가 하면, 체육 특기자를 시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채점 자체를 후하게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어째 미덥지 않다. 시험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한 부정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게다. 차라리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성적이 나쁜 학교의 교사 월급을 올려주는 건 어떨까. 이번엔 외려 성적을 낮추는 조작이 일어나려나….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