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 투자자 ‘환헤지’ 고민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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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 펀드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같은 펀드라도 환헤지 여부에 따라 올 들어 수익률이 최고 18%포인트까지 차이 나기 때문이다.

환헤지를 하지 않은 해외 펀드는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환차익을 누리고 있다. 이에 비해 환헤지를 한 펀드는 수익률이 영 신통치 않다. 환헤지냐, 환노출이냐. 환율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 펀드에 가입하려는 투자자들의 고민은 커진다. 환헤지란 환율 변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 지금의 환율로 거래 가격을 묶어놓는 것을 말한다. 달러당 1500원에서 1000원으로 원화 가치가 올랐다 해도 환헤지를 하면 원화로 환산한 해외 자산의 기준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원화 가치가 앞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해외 펀드에 가입하면서 환헤지를 해야 유리하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반대다. 환노출형을 선택하면 환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엔 해외 펀드에 가입할 때 환헤지를 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국내 운용사가 파는 상품은 대부분 환헤지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해외 펀드의 손실이 컸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주가가 폭락했어도 환노출형 펀드는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가 올라가 손실을 만회했지만 환헤지형은 환차익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 이에 따라 최근엔 운용사가 환헤지 여부를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을 늘리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달 초 ‘미래에셋China A Share주식형자 1’ 펀드를 출시하면서 환헤지를 할지 말지 고객이 직접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의 설정액은 각각 279원과 234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수익률은 달랐다. 0.64%대 5.9%로 환노출형의 수익률이 앞섰다. 펀드 설정 이후 1위안에 202원대이던 원화가치가 220.48원으로 떨어지면서 환헤지를 하지 않은 투자자는 환차익을 얻은 것이다.

환헤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다른 해외 펀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금과 귀금속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블랙록월드골드주식-자(UH)(A)’ 펀드(환노출형)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28.94%로 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환헤지를 한 펀드는 9.34%의 수익률에 그쳤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원화 값이 많이 떨어졌으니 이제 좀 오르겠지’란 기대감에 “이제는 환헤지형으로 가입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금융시장 불안으로 원화 가치가 또 급락하면서 똑떨어지는 답을 내놓기 어렵게 됐다.

삼성증권 김휘곤 펀드애널리스트는 “환율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며 “지금 해외 펀드에 가입한다면 환율의 움직임보다는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환헤지 여부를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환차익을 노리겠다’는 적극적 투자자라면 환노출형을 선택하는 게 맞다. 이와 달리 ‘환율로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투자자는 환헤지를 하는 게 낫다.

세금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국내에서 설정된 역내 해외 펀드는 올해 말까지 주식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지만 환차익에 대해선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환차익을 기대하지 않고 주가 상승만 기대하는 투자자라면 환헤지형 역내 펀드가 적당하다. 이에 비해 외국에서 설정된 역외 펀드의 경우 주식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만 환차익엔 세금이 없다. 따라서 환차익을 노리고 환노출형 펀드에 가입할 땐 역외 펀드가 더 효과적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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