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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신종괴질 안전시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병든 소에게서 사람으로 전염돼 뇌에 구멍이 뚫려 사망한다는 광우병. 광우병 파동의 근원지 영국은 예방을 위해 작년 한해 1백30만마리의 소를 도살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도 33억파운드 (한화 4조6천억원) 다.

유럽연합 (EU) 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앞으로 광우병이 우려되는 소를 모두 도살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58억달러 (5조2천여억원) 란 천문학적 비용을 농가 피해보상금으로 마련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광우병으로 의심돼 사망한 사람은 20명이 채 안된다.

이들이 병든 쇠고기를 먹어 사망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이 때문에 그 돈이면 말라리아와 굶주림으로 매년 수천만명씩 죽어가고 있는 제3세계 국민들의 생명을 모두 구하고도 충분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처럼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지금 병든 쇠고기를 방치하다 자칫 잠복기가 끝나는 수십년후 수십만명의 뇌에 한꺼번에 구멍이 뚫리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 관한 문제인만큼 비용부담과 확률논리로, 그리고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문제없으리란 안일한 자세로 대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제너와 파스퇴르이래 역병과의 싸움에서 줄곧 우위에 서왔던 인류는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한차례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바 있다.

81년 아프리카일대 원숭이와 원주민들의 토착질환이었던 에이즈가 LA거주 동성연애자에게서 발견됐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정식으로 분리된 것은 84년. 그러나 불과 3년 사이 에이즈는 급속도로 확산돼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감염자만 2천9백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환경파괴와 항생제 남용으로 신종 전염병의 창궐은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얌전했던 대장균이 갑자기 돌변해 숱한 사상자를 낸 이웃나라 일본의 O157 대장균 사태나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와 에볼라바이러스의 출몰, 독감과 페스트의 잇단 부활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도 신종괴질에 대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문제는 국내 방역체계가 지나치게 주의보 위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당국에서 주의보를 내리면 백신접종을 서두르는 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방역은 주의보를 내릴 새도 없이 발생한 정체불명의 전염병을 얼마나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보건복지부내 방역담당직원은 의사 2명을 포함해 고작 12명. 현장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역학전문가는 전무하며 그나마 콜레라.뇌염등 1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한 전염병 방역에 주로 매달리고 있다.

7천여명의 전문인력을 갖추고 물샐틈없는 전염병 감시망을 설치해 신종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조기진압하는 미질병통제국 (CDC) 이 부럽기만하다.

우리 경제규모에 걸맞는, 제대로 된 방역기관이 설립되는 날은 언제일까.

홍혜걸 생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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