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두 번 울린 은행연합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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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에 사는 金모씨는 5년 전 다니던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송사 끝에 金씨는 회사에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으나 이를 갚지 않았다. 그러자 법원이 金씨를 2년 전 신용불량자로 등록했다.

이후 각종 금융거래가 끊기는 등 불이익을 받아온 金씨는 지난 4월 희소식을 들었다. 신용불량자 기록을 관리하는 은행연합회가 세금 체납자나 법원 판결에 의한 채무 불이행자를 신용불량자 기록에서 삭제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金씨는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금융거래를 재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은 金씨의 신용정보를 조회해 보더니 금융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金씨는 신용불량자 기록에선 제외됐지만 '공공정보기록'에 법원 채무 불이행자로 여전히 등록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4월 26일 15만명의 세금 체납자와 법원 채무 불이행자를 신용불량자에서 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연합회는 그 이후에도 해당 정보를 공공정보기록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금융회사에 제공하고 있어 신용불량자 숫자를 줄이기 위한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각 금융회사는 고객과 금융거래를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 정보뿐 아니라 공공정보기록까지 조회한 뒤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에라도 연체나 체납 사실이 있으면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정보기록에는 국세.관세.지방세 등을 3회 이상, 500만원 이상 체납하거나 법원 판결에 의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등록된다.

연합회 관계자는 "세금 체납이나 사적인 채무 불이행 관계까지 신용불량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규정을 변경했다"며 "다만 세금 체납 등도 중요한 신용정보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아예 없앨 수는 없어 금융회사에 참고자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계 관계자는 "대출이나 카드발급을 해줄 때는 신용불량자 기록과 공공정보기록을 모두 조회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아무 실익도 없으면서 같은 일을 둘로 나눠놓아 일만 번거로워지고 관련 전산망을 고치는 데 비용만 들었다"고 지적했다.

정경민.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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