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포주와 기둥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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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쌍소리는 쉽사리 성기 (性器) 나 성교 (性交)에 기탁 (寄託) 한다.

음양 (陰陽) 의 단순 명쾌한 대립 또는 화목, 억압되고 혼돈된 성적 수치감의 폭발, 이 두가지가 그 포인트다.

쌍욕은 아무리 약한 사람도 감행할 수 있는 쉬운 공격이다.

무식해도 알아듣고, 유식한 사람도 금세 분노해 오랫동안 마음에 상처를 입을 만큼 효과적이다.

그런데 그 사격은 조준 안해도 매우 정확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오히려 푸짐하고 통쾌해 '껄껄' 웃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는 기업과 은행의 위기가 태풍처럼 덮치고 있다.

기업 따로, 은행 따로 떼어서는 쌍소리도, 형이상학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둘의 떨어질줄 모르는 과잉 성교 도중에 한겹 더 겹쳐 일어난 질경련 (膣痙攣) 같은 것이 이 위기의 정체라고 나는 푼다.

기업이 남성이고, 은행이 여성이다.

망신살도, 책임도 남녀가 반반씩 아니라 각각 전체를 질 수밖에 없다.

동료에게 부탁해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이자 성 전문가인 곽대희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질경련은 흔한 일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가도록 기다리면 풀린다고 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여성의 불안심리가 원인이라고 한다.

잠자리 환경이 너무 불결하거나 위험할 때도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

상대방인 남자의 책임일 때도 많다고 한다.

남자 책임론은 남성 우위론의 암묵적 인정일 수도 있는데 분석력이 뛰어난 여권운동가도 더러 빠지는 논리적 함정이다.

기업의 부채의존 과다는 고장난명 (孤掌難鳴) 이란 속담 속에서라야 제대로 풀린다.

돈을 뭉텅뭉텅 꿔준 은행이 없었다면 기업이 무슨 수로 부채비율을 지금처럼 평균 4백%대까지 높일 수 있었겠나. "사내만 탓할 것이 아니라 계집도 꼬리를 친거라니까. " 기업과 은행에 대해서도 이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재미는 기업과 은행만 보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성장 비밀은 부채를 통한 자본조달에 있었다.

기업이 자기자본만 가지고 장사했더라면 단순 산술로는 현재 한국 국민소득의 5분의4는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판이다.

재미를 본 것은 온 국민이고 꼴사나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 기업과 은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쌍소리와 가장 다르리라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감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제1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기업이 부도를 내고 거기에 돈을 댄 은행이 도산에 직면하게 된 제1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을 너무 많이 쓰고 인건비를 너무 올려 준 것이 단일 최고 원인이라고 연역하는 지식인이 불어나고 있다.

말도 안된다.

고용과 임금이 전 경제의 생산성 내지 경쟁력보다 거품을 내며 웃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다른 원인의 결과에 불과하다.

시장의 힘과 정보를 깔아뭉갤 수 있는 두개의 힘이 그에 앞서 있었다.

하나는 정부였고, 하나는 기업의 낙관 편향적 의사결정기구였다.

정부는 은행과 기업을 주물러 왔다.

특히 은행에 대해서는 포주겸 기둥서방 노릇을 해왔다.

기아그룹과 그 채권금융단의 경우처럼 상황 도중에 서로 상대방의 책임이라 우기고만 있거나 환경 불안에 계속 떨고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그 경련은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런 책임전가 사조나 열악한 금융.기업 환경이 확산됨에 따라 경련 발생건수는 희귀 (稀貴)에서 점점 다반사로 돼가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기업과 은행이 성교의 중용 (中庸) 을 찾게 해야 한다.

이 중용은 시장 바닥 가운데에 막힌 벽 없이 침실을 차림으로써 저절로 이뤄진다.

주식회사의 의사 결정권은 증권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돼야 한다.

기업이건 은행이건 주주총회가 기업 지배구조의 중추가 돼야 한다.

주주의 접근 합리화를 위해 지주회사제도는 광범하게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부라는 기둥서방이 남의 성교 장면을 엿보는 일도, 간섭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제1원인은 정치권과 정부였다는 것이 나의 쌍소리요, 형이상학이다.

<강위석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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