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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추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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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교황 베네딕토 16세 “고귀한 영혼, 평화로 맞아주소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끼며 추기경님과 모든 한국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서울의 가톨릭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추기경단의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노고에 보답해 주시고 그분의 고귀한 영혼을 하늘 나라의 기쁨과 평화로 맞아들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장례 미사에 모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족과 모든 분에게 주님의 힘과 위로에 대한 보증으로서 진심으로 사도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이명박 대통령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 주고 가셔”

 오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큰 어른인 김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 합니다. 힘들어 뵐 때마다 기도해주고 용기와 격려를 준 추기경님의 숨결을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가톨릭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 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 편에서, 때로는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고 행동했습니다.

민주화 시대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걸 가르쳤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는 준엄히 꾸짖었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 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분을 데려가시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2006년 2월 제가 추기경으로 서임됐을 때 김 추기경께서 “이제야 다리를 뻗고 잘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그분이 평생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살아왔는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1970~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느라 사제로서, 인간으로서 겪은 심적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성자처럼 살았던 촛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평생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한 사제였습니다. 사랑과 나눔을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줬습니다. 그래서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죽음은 곧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이에게 죽음이란 희망의 문턱이요,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랑하는 김 추기경님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에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참사람의 모습 보여준 삶”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추기경께서는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는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민족의 영적이고 물적인 안녕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셨던 분이십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주위 사람들 사랑에 감염”

예수님이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기적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갑자기 뻥 하고 산처럼 솟아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즐거운 상상을 해보면 예수님이 먼저 당신 도시락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이를 보고 너도나도 감춰뒀던 것까지 다 꺼내서 옆사람과 나눠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배불러서 그만 먹겠소 하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가 되고 나눠 먹은 사람 숫자는 5000명이 됐을 것입니다.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장기 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강우일 주교 “식었던 국민 마음 덥혀”

추기경님이 계속되는 육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정신적으로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 홀로 힘겹게 싸우는 걸 봤습니다. 저는 몇 주 전에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편히 쉬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추기경께서는 투병과 죽음을 통해 경제위기와 사회 불안으로 깜깜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기 시작했습니다. 추기경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곳에서 말씀을 했을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이들이 말씀을 음미하고 가르침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홍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밀알처럼 살기로 다짐”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정리=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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