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세기를찾아서]28.독일 베를린 장벽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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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은 독일 베를린의 한복판에 있는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이 문은 분단독일의 상징이었던 문입니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전후 45년 동안 동서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은 사라지고 지금은 시원하게 트인 대로에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이 거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느끼는 첫번째의 감회는 분단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은 우리의 판문점과는 달리 독일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곳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산골짝의 판문점과 녹슨 기찻길을 먼 곳에 두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독일의 장벽은 독일인들의 가슴 위에서 일상의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한국의 통일은 독일을 모델로 삼을 수 없다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가장 큰 이유로 드는 것이 독일인들의 통일의지입니다. 독일의 분단은 2차대전후 전승국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독일인들의 기본인식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통일을 독립(獨立)의 의미로 읽고 있었습니다. 교류와 협력을 통한 통일노력은 독일민족의 영광으로 나아가려는 전통적 의지와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분단상태로라도 얼마든지 번영할 수 있고 선진국진입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차이는 동·서독은 통일 이전에도 그 사회의 기본구조에 있어서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서독의 자본주의는 교육·의료·노동·실업 등 사회의 전 분야에 걸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이 갖추어진 일종의‘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동독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침투할 여지가 없었던 반면에, 반대로 동독쪽에서도 서독자본주의에 대한 반자본주의적인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구조가 별로 다르지 않은 토대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이 통일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사실입니다. 스펙트럼의 양극에 갈라서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독일이 통일 이후에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여러 분야에서 확인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은 브란덴부르크문 가까이 있는 포츠담플라자의 건설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사당(帝國議事堂)의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비롯하여 동·서독에 걸친 넓은 지역에는 야심찬 건설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인포박스(Infobox)에 전시되어 있는 마스터플랜은 참으로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현장 역시 무수한 크레인의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벤츠·소니등 거대 초국적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내외 자본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2005년에 그 대단원을 완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현장에서 독일 통일의 보이지 않는 힘을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통일의지나 민족정서와는 다른,이를테면 당신의 표현처럼 통일을 이끌어낸‘물리적 동력’인지도 모릅니다.

독일은 통일에 따른 부담을 내외에 호소하고 있지만 독일경제는 통일을 계기로 비약의 발판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방대한 동독의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통독에 이은 건설투자는 새로운 프론티어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통일고통의 분담이라는 민족적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사회보장의 축소와 임금의 인하를 설득할 수 있는 계기를 얻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신보수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부담을 국가재정에 전가시킨 다음 독일자본은 새로운 축적의 기반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통일의 여세를 몰아 그 연장선상에서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평균 4백만 이상에 달하는 실업과 경기침체 등 독일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침체는 통독에 따른 부담 때문이라기보다는 유럽경제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이곳 독일경제를 보는 일반적 시각입니다. 여기에 독일의 유럽연합(EU)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독일은 통일에 이어 이제는 유럽연합을 주도하여 산업구조를 새로운 체질로 전환하고 유럽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함으로써 그들의 전통적 민족의지를 관철해가고 있습니다.

통일에 이어 새로운 약진을 준비하고 있는 독일의 동력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또다른 벽을 쌓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독일을 연상케 하는 우려였습니다.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이 과거 프로이센왕국의 개선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있는 유서깊은 보리수거리와 6·17거리는 나치 히틀러가 그 위용을 만방에 과시하던 퍼레이드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국민경제라는 카테고리가 아직도 유효한가라는 의문이 제시되고 있지만 냉전의 종식이 민족적 정념(情念)을 증폭시키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독일의 통일이 20세기를 넘어서는 것이기보다는 그 발상과 지향에 있어서 20세기를 반복하는 보수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통일독일에서 확인하는 활성은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통일은 민족의 비원을 성취하는 것일 뿐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틀이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설사 새로운 틀이 아니라 하더라도 평화와 통일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가치일 것입니다. 통일독일에 대한 우려는 우리의 낙오감(落伍感)을 달래려는 가난한 마음이라는 자책을 금치 못합니다.

나는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남아있는‘장벽’을 찾아갔습니다. 2㎞에 달하는 장벽은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환희를 새긴 수많은 글과 그림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 글과 그림들은 지난 세월 독일인들이 치러야 했던 분단의 아픔과 희생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장벽을 따라 걸으며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 분단이란 땅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가르려고 하는 헛된 수고임을 깨닫게 하는 글귀입니다. 누군가 한글로도 적었습니다. “우리도 하나가 되리라. ”

독일의 통일 그것은 분명 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한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먼저 민족적 신뢰를 이루어내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배울 수밖에 없는 모델임에 틀림없습니다. 배울 수 없으면서도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모델. 이것이 통일독일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역설의 교훈인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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