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빚보증 규제' 불난데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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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다한 차입의존경영은 우리나라 기업의 아킬레스건이다.

불황기에는 빚진 기업뿐만 아니라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마저 파산의 위험 속에 몰아 넣는다.

대기업.중소기업.은행.제2금융권을 가릴 것 없이 지금 우리 경제는 전체적으로 이 위험에 처해 있다.

개별적으로는 기업이건 은행이건 파산할 수 있다.

그런 회사의 주주 (株主) 는 자산을 날리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은행의 예금자는 맡긴 돈을 날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유시장경제제도가 가진 장점에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몇개 기업, 몇개 은행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전경제에 걸치는 만연 (蔓延) 현상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별기업 차원을 넘어선 경제병 (經濟病) 을 구제하는 역할은 정부가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소수의 특별한 발병 (發病) 과 전국적 역병 (疫病) 현상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기업과 금융기관에만 맡기고 있다.

미국정부를 보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간섭적인 자유시장경제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다.

그러나 1930년대 경제공황을 구제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70~80년대의 고질적 무역수지적자를 벗어나려고 정부기구를 바꾸고 상무부.무역대표부.각국주재 대사관은 미국기업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정부의 모범된 경제적 역할이다.

우리 정부는 부당한 규제.간섭을 할 때는 적극적이고, 정부의 의당 (宜當) 한 경제적 역할은 피해버린다.

더구나 기업도산에서 금융공황으로 발전하는 기미가 점점 강해지는 이 시점에서 30대 기업 계열사의 빚보증정리를 들고나와 자기자본 1백% 초과분을 7개월안에 해소하라는 것은 너무도 황당하다.

독점규제와 공정거래라는 비교적 느긋한 경제정의상 명분을 걸고 기업의 빚 과다는 기업의 잘못이라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는 불난 나라경제 전체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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