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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가 달려온다…'탄생 100주년 특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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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의 환영, 청동, 100×100×140㎝, 1977~84. 거대한 엄지손가락으로 상징한 신의 왼쪽에 인류를 대표하는 남자가, 오른쪽에 천사가 날개를 버팀목 삼아 묵상하고 있다. 달리는 이성적인 규칙과 바름에 대한 경멸, 환상에 뿌리를 둔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일념으로 기인처럼 살았다.

▶ 달리(左)와 갈라 엘뤼아르. 달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라 부른 갈라는 50년을 함께 살며 아내.모델.뮤즈(예술의 여신)이자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친 구원의 여성상이었다.

▶ 매 웨스트 입술 소파, 220.5×70×90㎝, 혼합재료, 1936~89. 관능적인 여배우 매 웨스트의 입술 이미지를 기능적인 사물로 탈바꿈시킨 디자인으로 수많은 복제품이 뒤따랐다.

▶ 스페인 피게라스에 선 달리의 ‘극장식 미술관’ 안에 있는 눈속임 방의 구조 속에서 이 소파는 매 웨스트의 얼굴로 변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는 신화가 된 예술가다. '예술가의 신화' '명성의 신화'가 20세기의 독특한 산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똑똑했다. 스페인 피게라스에서 프랑스 파리로, 다시 미국 뉴욕으로 돈과 명성을 찾아 달리면서 흥행사 구실에 온 몸을 굴리면서도 대중들 위에서 놀았다.

달리는 콧수염을 기르고 눈알을 동그랗게 키운 어릿광대로서의 역할을 즐겼고 명사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데 몰두했다. 작품보다 그 자신이 더 작품같았던 달리를 보고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는 말했다. "달리를 격려하고 싶다. 그의 캔버스 앞에서 돼지처럼 꿀꿀거리고 싶다."

올해는 달리 탄생 100주년이다. 스페인과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12일 막을 올렸다. 조각 30점, 판화와 불투명 수채화(과슈) 등 300점, 가구 7점, 옷 10점, 사진 40점 등 400여점의 다양한 작품과 자료로 달리의 작품 세계와 내면 풍경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초현실주의 패션쇼, 달리가 만든 영화 상영 등 부대행사도 여럿 마련됐다.

전시장은 크게 '꿈과 환상' '관능성과 여성성' '종교와 신화' 세가지 주제로 꾸려졌다. 예술은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보는 이가 바로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을 던져줘야 한다고 주장한 달리다운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달리의 상표처럼 돼버린 '늘어진 시계'는 우리의 시각을 구속하는 선입견과 족쇄를 부수기 위해 마련한 눈속임이자 혼돈의 세계며 환상적 접근이다.

그는 단단하고 기계적인 사물을 부드럽고 흐물흐물한 형태로 바꾸는 모순으로 도발했다. 그는 신체 기능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려 인류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익살을 부렸다.

달리 전시장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면 그것이 한 천재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재로서 세상 사람의 인정을 받겠다는 한 예술가의 집념이요, 일종의 강박관념이 스민 일기장이 거기 펼쳐진다. 성공하기 위해 괴짜라는 개성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개인사를 마음대로 주무른 그는 현대가 원했고, 동시에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달리, 신화 생산자로서의 달리, 엄청난 대중성과 세계적인 호소력을 지닌 스타 달리가 여기 있다. 9월 5일까지. 02-732-5616~7.

정재숙 기자

[달리의 '입담']

"내가 미국에서 사는 이유는 간단해요. 수표 더미가 설사처럼 내게 쏟아지기 때문이지."

"언론의 공격은 언제나 내게 위안을 준다오. 달리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내 작품은 하나의 반영체, 즉 내가 완성시키고 내가 쓰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오. 그림 역시도 내 우주론의 한 조각일 따름이오. 그러니 내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 채 내게 감탄사를 연발해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겠소!"

'지식인은 돼지다, 고로 나는 최상의 돼지다'(알랭 보스케 지음, 작가정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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