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조선 초기에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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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의 매운 맛을 상징하는 고추가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통설과는 달리 훨씬 이전인 조선 초기에도 한반도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경란 책임연구원은 한국식품연구원이 18일 발간한 계간 ‘한맛·한얼’에서 고추의 일본 전래설을 고문헌 분석을 통해 부인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이성우의 『고려이전한국식생활사연구』(1978년)에서 소개된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었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 이전에 김치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종 15년(1433년)의 문헌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세조 6년(1460년)에 발간된 『식료찬요(食療纂要)』에 고추장을 뜻하는 ‘초장(椒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초(椒)가 현대의 고추를 뜻하는 것인지가 핵심인데, 이를 입증하는 기록이 고문헌에 다수 나타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임진왜란 발발 100여 년 전인 성종 18년(1487년)에 발간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사진)에는 한자 초(椒)에 한글로 ‘고쵸’라고 해놓았고, 중종 22년(1527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도 ‘고쵸 초(椒)’가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순창초장(淳昌椒醬)이 전국에 유명하다’는 표현이 이미 1670년대 이후 문헌에서 나오므로 ‘초장=고추장’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일본 전래설’에서의 핵심은 콜럼버스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아히(aji)라는 고추를 유럽으로 가져갔으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중국→인도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권 박사는 이에 대해 콜럼버스가 가져갔다는 아히(aji)라는 고추는 우리나라 고유 고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물학적·농경사학적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연구팀은 고추와 고추장이 중앙아메리카가 아닌 중국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근거로 중국 고문헌의 기록을 제시했다. 중국 당나라 선종(850년) 때 발간된 『식의심감(食醫心鑑)』은 닭 관련 음식을 설명하며 ‘초장(椒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권 박사는 “고추가 중앙아메리카와 일본을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데 의문을 갖고 15년 전부터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다”며 “인류학회와 식문화학회에 토론을 제안했으며 6월께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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