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새물결]은행 목 죄는 부실채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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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제 은행들에게 부실채권은 더이상 '참으며 지낼만한 신경통' 이 아니다.

당장 메스를 들이대 수술이라도 해야 할 중환 (重患) 으로 도졌다.

한보.삼미.진로.대농.기아등 대기업의 부실화가 잇따르자 은행들도 부실채권의 늪에 단단히 발목을 잡히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집계한 은행들의 부실여신은 지난해말 현재 2조4천4백39억원. 이것이 연내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부실채권정리전략을 세워 환부 (患部) 를 어떻게든 줄이려 애쓰고 있다.

현재 부실채권을 정리하려는 은행들의 노력은 크게 세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덩치가 큰 기업분야의 부실채권은 연내에 부실채권정리 전담기구로 확대개편될 성업공사로 떠넘길 예정이다.

갖고 있어봤자 팔리지도 않을 것들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치우자는 것이다.

은행이 법정관리등을 통해 부실기업을 처리하는데 보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의 금리나 물가수준을 전제로 계산하면 10년의 세월을 보내 겨우 대출금을 회수해도 현재가치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행이 떠안고 혼자 해결하려 하는 것보다는 싸게라도 빨리 성업공사에 넘기는 것이 한결 유리하다는 것. 하나은행 윤교중 (尹喬重) 전무는 "부실채권을 끌어안고 시간을 끌면 은행만 손해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며 "이런 의미에서 성업공사의 기능은 은행의 재무구조개선에 매우 중요하다" 고 말했다.

두번째로 대출금을 출자전환해 기업을 정상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팔리지는 않고 그냥 두었다가는 채권을 회수할 수도 없는 부실기업에 대해 대출금을 아예 지분으로 전환시켜 경영정상화를 도와주자는 장기전략이다.

실제로 서울은행은 수차례 공개입찰에 실패한 건영에 대해 대출금의 일부를 출자전환하기로 하고 규모와 절차등에 대해 실무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은행의 유가증권 투자한도등 규제가 많은데다 출자전환한 기업이 정상화될 가능성도 불확실해 쉽게 일반화되기는 아직 어려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은행이 개인부실에 대한 회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개인부문의 부실채권규모는 은행별로 전체부실의 10~20%정도에 불과한데 비해 건수가 많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분야였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은행들이 개인부실채권의 회수에도 눈을 돌리게 된 것. 조흥은행이 새로 설립을 추진중인 부실채권회수 전담 자회사도 기업의 대형부실채권보다 개인의 소액부실채권 회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은행도 이와 비슷한 채권회수 전담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이를 별도의 자회사로 만들지, 내부의 별도조직으로 둘지에 대해 검토중이다.

행내에 개인부문의 부실채권회수팀을 설치한 곳도 늘고 있다.

서울은행은 70여명으로 구성된 소액채권회수 전담반을, 신한은행은 30명의 개인신용관리실을 최근 신설해 채권회수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주로 전직경찰관을 파트타임으로 채용해 채무자의 재산추적작업을 벌인뒤 회수할만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소송등 법적절차에 들어가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개인부실채권은 은행이 마음먹기 따라 회수율이 크게 높아질 수있다" 며 "소액이라도 부지런히 거둬들이면 은행수지개선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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