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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늙지 않았다 … 다만 변신했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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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홍콩 누아르에서 ‘쌍권총을 든 의리의 사나이’로 우리 기억 속에 박혀있던 저우룬파는 새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 코믹한 조연 무천도사를 선보였다. [20세기 폭스코리아 제공]

홍콩 누아르의 살아 있는 ‘다거(大哥)’ 저우룬파(周潤發·54)와 마주 앉았다. 콧수염을 기르고 다소 살집이 붙은 모습에선 변함 없는 카리스마 못지 않게 세월의 체취가 물씬하다. 새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널리 알리려 한국을 찾은 참이다. 공식 내한은 15년 만이며 할리우드 영화를 들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공식 기자회견 뒤 따로 만난 자리에서 저우룬파는 농담을 잘했고, 꼼꼼히 답했다. “다시 젊어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엔 주저 없이 “전혀(No)”라고 답했다. ‘형님’은 늙지 않았다. 다만 변신할 뿐이다.

-오전에 공개된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맛보기 영상’에서 코믹한 조연 무천도사를 선보였다. 쌍권총을 쏘던 옛날과 확 다른 낯선 모습이다.

“1980년대엔 코미디 영화를 많이 찍었다. 오랜만에 보니 낯설다 싶겠지만, 나는 찍으면서 즐거웠다. 실제론 만화 원작에 나오는 무천도사가 훨씬 대단하다. 만화 속 변태 캐릭터도 가족 영화인지라 훨씬 완화됐다. 나? 사실 잘 찾아보면 변태적인 면이 있다(웃음).”

-할리우드 진출로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잃은 건 없다. 살면서 이제까지 뭘 잃어본 적이 없다. 얻은 것은 홍콩 시절보다 뜸하게 출연하니까 몸은 덜 힘들고 미국 달러로 받으니 주머니 사정은 두둑해졌다는 점. (웃음 뒤 진지하게) 서양인이 바라보는 나는 동양적 시각과 많이 달랐다. 덕분에 배우로서 생명력이 길어진 게 가장 좋은 점이다.”

-할리우드에서 당신이 말런 브랜도 같은 역할을 맡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은 문화·언어적으로 제한된 역할을 맡게 마련이다. 말론 브랜도가 ‘올드 보이’에 출연했다면 과연 그런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을까. 미국은 아직 백인 위주 사회이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흑인 대통령이 나왔으니 앞으로 언젠가 아시아인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게 문화적인 변화가 점차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박준형씨를 비롯, 아시아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겸손해질 것,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할 것, 인격을 기르는 한편 체력에도 힘쓸 것. 할리우드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중도 하차한 게 아쉬웠다. 우위썬 감독과 차기작 계획이 있나.

“아쉬움이 있었다면 ‘드래곤볼’을 보며 위안 받길 바란다(웃음). 우위썬 감독과는 언제나 좋은 역할로 다시 일하고 싶다. 한국 영화 감독 중엔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과 만난 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분이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드래곤볼 7개를 모아 소원을 하나 이룰 수 있다면.

“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90년대 이래 할리우드로 진출해 최근까지 ‘캐리비안의 해적3’ 등에 출연해 온 저우룬파는 “요즘 홍콩의 제작환경이 안 좋아 80년대에 맡았으면 좋았을 법한 역할만 들어온다”며 “한국·중국·일본 등이 합작한다면 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드래곤볼 에볼루션=전 세계적으로 2억 부 이상 팔린 만화 ‘드래곤볼’을 실사 영화로 옮긴 작품. 저우룬파는 주인공 손오공을 도와 드래곤볼 7개를 찾으러 나서는 무천도사를 연기한다. 그룹 god 출신 박준형씨가 손오공의 동료 야무치로 출연한다. 100% 할리우드 자본으로 홍콩 스타 출신 저우싱츠(周星馳)가 제작하고 제임스 왕이 감독을 맡아 다음 달 12일 한국과 일본에서 세계 첫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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