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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인기드라마 '용의 눈물' 작가 이환경씨(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인기TV드라마 '용의 눈물' 의 작가 이환경 (李煥慶.47) .162㎝, 70㎏. 쏘는 듯한 눈매, 얇은 입술. 은퇴해 몸이 분 권투선수를 연상케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정규 학력의 전부. 10대와 20대에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없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라켓볼을, 혹은 핑퐁을 치듯 두서없이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남자와 남자의 눈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남성성 (물론 남성우월주의는 아니다) 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 특히 감성지상주의로 흘러가는 드라마를 말할 때는 욕설도 서슴없이 섞었다.

인터뷰는 인터뷰고 술이나 한잔하자는 그. 이 진솔한 인상의 40대후반 방송작가와의 대화는 자못 유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대화의 방식도 바로 쳤다가 푹 늘어졌다가 요컨대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되어갔다.

- 남자, 남자 말하는데 도대체 남자란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나. 뭐 말없고 뒤끝없고 의리있고 씩씩하고 보스기질이 있고 그런 남자가 진짜 아니겠는가"

- 기자도 술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마시나. "요즘은 소주 세병밖에 못한다.

한창때는 맥주잔으로 마셔 소주5병은 해치웠는데. 방송국에서 깨어 있는 나를 본 PD들이 많지 않다.

어쨌든 매일 마신다"

- 글쓰는 고통에 비춰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래도 주량이 좀 심하지 않나. "나는 새벽에 일어나 종일 구상하고 쓰고 그런다.

나는 글쓴 다음 탈진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어낼 뿐이다"

李씨는 새벽에 집필을 시작해 오후5시에 한회분 1백20~30매 (2백자 원고지) 를 마친다.

놀라운 속도다.

주2회분을 구상 이틀, 집필 하루 식으로 끊임없이 노동한다고 했다.

- '용의 눈물' 도 화제지만 개인사에 극적인 요소가 많다고 하던데.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다 따위 관심은 제도권에서 변방을 보는 저급한 호기심인 줄 안다. 그래도 궁금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다.

서른에 글쓰기를 시작해 이제 18년됐다.

아버지는 일본서 대학 나온 뒤 철도청 고위간부로 일한 인텔리였다.

나는 6.25 나흘전 인천에서 태어났다.

피난갔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강제로 노동당 입당원서를 썼다더라. 이 일로 아버지가 장기간 복역했다.

연좌제로 집에는 사찰계 형사들이 들락거렸고 집안이 어려워 학비를 못냈다.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다 집을 나갔다.

19세 때까지 부산.목포.광주등지를 떠돌았다"

- 글쓰기는 언제부터 마음먹었나.

"초등학교때 작문시간에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노벨상 받은 기분이었다.

마침 시인이었던 친구아버지가 나의 작문을 보고 '너는 될 것 같다' 며 격려해줘 큰 힘이 됐다"

- 막막한 사춘기 시절이었을 그때 가출해서 무엇을 할 생각이었나.

"가출하니 막일을 해도 배는 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구두닦이.중국집 배달.부두경비.목재소일.세차장일등 노동현장을 두루 전전했다.

그러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맞춤법.띄어쓰기가 틀린 줄도 모르고 무작정 써댔다. 열여섯살 때부터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으나 매번 떨어졌다.

알고보니 맞춤법부터 틀린 게 문제였다"

李씨는 20대에도 공사장을 전전하다 당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지요하 (82년 등단) 씨를 만났다.

지요하씨는 그에게 소설책을 건네 주면서 맞춤법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 소설가 김성동씨는 어릴 적 집에 전기가 없어 읍내 거리 외등 아래서 밤새 책을 읽었다고 들었다.

그 때 글은 어떻게 읽었나.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엿장수 따라다닐 때는 고물로 바꾼 헌책들을 읽었다.

문학잡지 (자유문학.현대문학.월간문학등) 는 밥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꼬박꼬박 샀다.

이때 읽은 글들이 어느 순간부터 몸속에 소화돼 글로 살아나더라. 지금도 꾸준히 읽고 있지만 작품마다의 엑기스만 뽑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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