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암초 … 주식형펀드서 돈 빠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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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가뜩이나 정체돼 있던 주식형 펀드가 자본시장법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닥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주식형 펀드로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면서 펀드 상품 중 위험도가 큰 주식형 펀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주식형 펀드의 신규 설정액은 4일 자본시장법 시행을 전후해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즉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7일 동안 주식형 펀드에 새로 들어온 자금은 3343억원에 그쳤다. 시행 전 7일 동안의 설정액 6344억원에 비해 절반으로 준 것이다. 들어오는 돈은 크게 줄었지만 같은 기간 환매는 늘었다. 이 때문에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 6거래일 연속으로 설정액이 늘었던 주식형 펀드 시장은 4일 이후엔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본시장법 시행 뒤 7일간 빠져나간 돈만 2914억원이다. <표 참조>


삼성증권 양일우 연구위원은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은행을 비롯한 판매사에서 고위험상품으로 분류되는 주식형 펀드를 적극적으로 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펀드 가입에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도 신규 가입이 줄어든 요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르면 주식형 펀드는 ‘고위험’ 상품이다. 이는 ‘적극투자형’ 이상의 투자 성향을 가진 고객에게만 권유할 수 있는 상품에 속한다. 문제는 적극투자형이나 공격투자형에 속하는 투자자가 많지 않다는 것. 우리투자증권이 고객들의 투자 성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두 유형에 속하는 고객은 40.2% 정도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주식형 펀드를 포함한 모든 금융상품을 권유받을 수 있는 공격투자형의 비율은 전체의 14.3%로 가장 낮았다. 하이투자증권이 최근 집계한 고객 성향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안정추구형(24.5%)이 가장 많았고, 공격투자형(20.4%)과 적극투자형(18%)의 비율은 높지 않았다. 이는 판매사가 고객 10명 중 6명에게는 주식형 펀드 판매를 권유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고객이 자신의 투자 성향을 파악하고서도 굳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길 원한다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확인서에 서명해야 한다.

삼성증권 양 연구원은 “주식형 펀드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자본시장법 시행의 영향까지 겹쳤다”며 “펀드 상품의 분류 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주식형 펀드로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우리투자증권 서동필 연구원은 “표준투자권유준칙의 시행으로 주식형 펀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으리란 건 예상됐었다”며 “대신 혼합형 펀드가 상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예전에 주식형 펀드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혼합형 펀드가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식형 펀드보다 위험등급이 낮아 ‘위험중립형’인 고객에게도 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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