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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책임’누구에게 … 분쟁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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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원화가치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는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 거래와 관련한 분쟁에서 중소·중견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모나미와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신청한 ‘옵션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기업이 무제한의 손실을 볼 수 있는 키코 계약은 (달러가치의 변동 위험을 피한다는) 거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은행이 상품거래의 잠재적 손실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2. 같은 재판부는 12일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키코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은 원화가치가 달러당 1000원으로 떨어진 지난해 3~9월 손실을 축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사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던 만큼 계약을 해지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지금까지 키코 상품에 대한 가처분 소송에서 기업들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던 법원이 최근 은행들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지난달까지 재판부는 키코가 기업이 가입하기에 적합한 게 아니었고, 계약 과정에서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12일 내린 4건의 결정에선 새로운 기준이 나왔다.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과정에서 은행이 고객인 기업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권유했느냐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산중공업과 휴비컴이 은행을 상대로 낸 가처분을 기각한 것도 은행이 계약체결 이후에 고객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디엠에스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신청과 현대디지탈테크가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것은 해지를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은행이 기업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결정 내용을 보면 기업과 은행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과 은행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은행 측은 고객에 대한 사후적인 관리 노력이 있었는지를 재판부가 따진다는 점에 고무돼 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계약 해지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은행연합회 경영지원부 이광진 변호사는 “상품 판매 과정에 하자가 있다면 이는 손해배상의 문제”라며 “가격 변동을 이유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금융거래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쪽은 아쉽다는 입장이다. 수산중공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륙의 김성묵 변호사는 “은행이 제시한 방법이라는 것은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기업의 손실이 더 커지는 것”이라며 “제대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만큼 항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키코는 원화가치의 변동 위험을 피하기엔 적합하지 않았고 은행 측이 판매를 할 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재판부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 측에 유리한 부분이다. 키코와 관련한 소송은 아직도 100건 이상 남아 있다.  

김원배·박성우 기자

◆키코(Knock In Knock Out)=원화가치의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파생금융상품. 원화가치가 일정 범위를 유지하면 기업이 이익을 보지만 원화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면 기업이 손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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