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씨 옥중메모 파문-정계 금품로비 지시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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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감중인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 (鄭泰守) 씨가 옥중에서 메모지를 통해 측근들에게 그룹 재건과 정계로비등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무부가 4일 진상조사에 나섰다.

鄭씨가 지난달초 면회온 한보 임직원및 측근들에게 써준 것으로 보이는 총 13장 분량의 메모지에는 민주계 중진으로 정치발전협의회 주요 멤버인 모의원과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모후보를 선으로 연결, 1억원이라고 표시하는등 얼핏보면 유력한 여권 대선후보 진영에 로비를 시도한 것처럼 볼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된 것. 법무부는 이 메모지에 대해 "실어증에 걸린 鄭씨가 변호인과 나눈 필담용지중 일부가 유출된 것으로 보이지만 鄭씨의 필적인지는 확인해봐야 한다" 며 "鄭씨는 메모 작성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고 밝혔다.

한편 鄭씨의 변호인 허정훈 (許正勳) 변호사는 "지난달 鄭총회장을 만나 필담한 메모중 일부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출된 것같다" 며 "로비의혹은 전혀 사실과 다른 추측" 이라고 해명했다.

◇ 정계 로비의혹 = 메모지는 신한국당 경선 후보들의 이름을 적은 밑에 "가지고 있는 것 좀 사용. 이번에 당하면 못 일어난다" 고 씌어있어 정계에 대한 금품로비를 독려하는 문구로 해석되고 있다.

또 신한국당의 경선후보 한명과 민주계 중진을 줄로 잇고 그 옆에 '1억' 이라 적혀있으며 그 밑에는 맞은편에서 쓴듯 거꾸로 된 글씨로 다른 민주계 실세 두명 이름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許변호사는 "鄭총회장과 접견때 신한국당 경선에 관해 설명하며 필담을 주고 받은 메모로 안다" 고 말하고 "1억이라고 쓴 것은 내가 변호사 사무실에 5천만.7천만원등 두차례 세금이 나왔다고 하자 1억원을 鄭총회장이 결제해 준다고 해서 무심코 쓴 것이며 로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고 해명했다.

◇ 그룹 재건계획 = 메모지에는 "대선 끝날 때까지 민사는 항고까지 해서라도 끌고간다.

형사사건은 11월까지 항소심을 만료시켜야한다.

12월에 사면" 이라는 내용도 있어 사면에 대한 희망을 적고 있다.

◇ 왜 공개했을까 = 메모지에는 한보문제가 뜻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폭탄선언' 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경고메시지가 담겨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메모지에 남긴 "공장을 (제3자에게) 넘겨주고 정치자금 받아서 대선 치른다고 의혹 제기한다.

절대로 가만 있지 않겠다" 는 내용이 그것이다.

許변호사는 이에 대해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정당하게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취지로 적은 것일 것" 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 鄭씨의 행태로 보아 한보수사 당시 사법처리를 면한 정.관계 인사에 대한 경고메시지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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