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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오, 펠릭스 꿀빠!"

중앙일보

입력

“오, 펠릭스 꿀빠!(Oh, Felix Culpa! 오, 복된 탓이여!).”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2007년 7월 ‘인생을 돌아보며’라는 글을 평화신문에 기고했었다.

그는 “내 나이 85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며 “66년 전 1941년, 일본 상지대학에 갔을 때 학생 기숙사 사감이셨던 피스터 신부님은 나를 보고 기린아(麒麟兒)라고 하셨다. 행운아라는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말씀 그대로 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오, 펠릭스 꿀빠!(Oh, Felix Culpa! 오, 복된 탓이여!). 김 추기경은 당시 “여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진실로 하느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주교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대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밥’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이 뜻하시는 대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이콘(ICON)이 돼야 할 것”이라며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큰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 추기경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아본다.

“형과 내가 군위 보통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어머니가 당신 친정이 있는 대구에 다녀오셨다. 짐작컨대 어머니는 거기 계시는 동안 성당에서 사제 서품의 장엄한 예식을 보고 오신 것 같다. 그때 어머니는 감명을 깊이 받으신 모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둘에게 ‘너희는 이 다음에 신부가 되라‘고 이르셨다. 형은 그 이듬해 대구에 있는 신학교 예비과로 옮겼고, 2년 후 나도 가게 되었는데 형은 기쁘게 갔으나 나는 그렇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명을 따라 갔을 뿐이다” (「샘이 깊은 물」1984 ).

“과연 한평생을 착한 목자로 살 수 있을까?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내가 오히려 하느님 앞에 죄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18년 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에 회의를 여러 번 느꼈고, 신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 꾀병을 내어 한 학기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조금도 변함없이 나를 한 길로 이끄셨다. 그 큰 섭리와 은혜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 69세이셨던 어머니는 ‘자식이 신부가 되는 게 소원’이었던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가슴 벅찬 순간을 맨 앞자리 마룻바닥에 꿇어앉은 채 지켜보고 계셨다. 그날 막내아들이 신부가 된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서 기도와 눈물로 얼룩진 인고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평화방송 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신앙인의 삶이란 게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무시할 때 ‘저 사람은 우리 밥이야!’라는 표현을 쓴다. 주님은 그 정도로 당신을 낮추고 비우면서까지 우리 밥이 되어 주셨다. 나 역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이에게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표어대로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1970-19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시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십자가 제단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다. 다른 사람들이 점수를 매긴다면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십자가를 지고 걷는 심정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지쳐서 그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았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사회 격동기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조차 압력과 비난이 쏟아질 때는 한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어떠했는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벗어 던지지 않고 끌고라도 갈 수 있었던 힘은 많은 이들의 기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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